▲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천상병 시인은 1967년 ‘동백림사건’ 즉 ‘동베를린 사건’과 무관한데도 불구하고 특수기관에 불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후 후유증으로 불임의 몸이 되었고, 행불자가 되어 친구들이 제사를 지내준 다음에야 행려병자로 발견되는 사건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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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친구 동생인 목순옥 씨와의 결혼으로 인사동 거리에 작은 카페를 내고 그 수입으로 살아가게 되는데, 그 카페 이름이 바로 ‘귀천’이다.
 이런 일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인지 천상병 시인의 ‘귀천’은 간단명료한 어휘들과 절제된 분위기로 담담하게 사람의 죽음을 풀어내지만 그 아래에는 왠지 모를 슬픔이 깔렸음을 볼 수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각 연의 첫 행에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라는 동일한 구절이 반복되고 있다. 마지막 연을 제외한 나머지 앞의 두 연에서의 이 구절을 잘 보면 사실은 마지막 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도치 형태를 취함으로써 이 시는 많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또 ‘~리라’의 어미를 사용하여 독백 적 어조를 형성하였고, 3음보의 반복과 변조에 의해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
 이 시에서 화자는 ‘노을빛’과 함께 놀다가 ‘새벽빛’이 와 닿고 ‘구름’이 손짓하면 ‘이슬’과 더불어 하늘나라로 여행하고자 한다. 이슬과 노을빛은 찰나의 순간에 정말 잠시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고, 그러고서는 허무하게 문자 그대로 ‘스러져’ 가는 것이다. 천상병은 아마도 이러한 아름다움을 우리의 인생살이와 같은 것으로 본 것은 아닐까. 고통스러웠던 그때의 순간을 그냥 한때 지나가던 아름다움으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시에서 새벽빛과 구름은 죽음을 의미한다. 이슬과 노을빛과는 대립적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연의 ‘소풍’을 살펴보자면 소풍이란 문자 그대로 집-소풍지-집으로 돌아오는 하루 동안의 나들이를 말한다. 이 시에서 화자는 자신의 존재 근거를 하늘에 두고 있으므로 이 세상에 소풍을 나왔다고 할 수 있고, 이 소풍이 인생살이를 뜻함을 알 수 있다.


 화자는 하늘로 돌아가면 이 세상 소풍이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다고 한다. 천상병 시인은 고통스러웠던 인생살이를 극복하고 달관적 태도로 아름답게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목소리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묻어나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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