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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0여 년 동안 학교와 교육제도는 크게 변화가 없었다. 우리는 부모 또는 조부모 세대가 다녔던 학교에서 100년 동안 유사한 교과목을 비슷한 방식으로 지금까지도 배우고 가르치고 있다. 지금껏 입시제도는 여러 차례 바뀌었으나 근본적인 틀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교육 실태를 논할 때 흔하게 인용되는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친다”라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말은 현재에도 여전히 사살되는 말이다. 앨빈 토플러는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은 아직도 19세기에 머물러 있다.

  분명한 것은 4차 산업혁명 시기 이전의 2차, 3차 산업혁명 시기와 달리 교육의 양적 팽창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우리의 교육은 그동안 고학력화가 매우 빠르게 이루어졌고, 너무 많은 학생이 대학에 진학한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사교육에 엄청난 지출을 하고 있다. 반면에 교육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가르쳐야 할지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질적 변화’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크게 진전이 없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대학 입시의 모든 학습 초점을 맞춘다. 그에 비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변화에 유연하고 평생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재가 요구된다. 이제 교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하고 학생은 강의를 듣는 방식의 수직적 학습은 바뀌어야 한다. 학생이 학습 동료들과 협력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수평적 학습이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만약 우리가 교육 혁명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4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닌,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하도록 만들 것이다.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국가적 측면에서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제는 학교가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계속 변화하고 있으며, 학교에 필요한 변화를 지역과 국가의 정책이 뒷받침해 주어야 수월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사회에서의 학교혁신은 정책 입안자들의 전반적인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부터 바뀌면 세상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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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차 산업혁명과 AI의 시대가 열리며 세계가 점점 복잡해지는 가운데 교육을 혁신해 사람들에게 유용한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인도의 민족운동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 충분히 많은 사람이 변화한다면 그것은 운동이 되고, 그 운동이 충분한 열정을 끌어낸다면 그것은 혁명이 된다.”라고 말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의 교육에도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미국의 정치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람, 변할 여지가 있는 사람, 그리고 변화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의 교육혁명을 끌어내려면 우리가 모두 변화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미래의 모습을 깨닫고 스스로 분발하고 일어나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 앞으로의 미래 교육을 일으켜야 한다. 교육이 곧 미래이고, 미래가 곧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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