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란 무엇인가? 신체적인 손상을 가져오고, 정신적·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는 물리적인 강제력을 말한다. 폭력의 원인은 무엇인가? 인간의 욕망이다. 인간의 욕망에 근거한 폭력은 인류의 탄생부터 존재한 고유한 행위다. 인류는 수많은 폭력을 통해 역사를 만들었고, 인간의 욕망은 수많은 폭력의 명분을 만들었다. 그래서 다양한 폭력의 형태가 나타났는데, 그런 인간의 욕망과 폭력의 형태를 극대화하여 표현한 영화가 있다.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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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태엽 오렌지>는 1962년 앤서니 버지스가 집필한 소설인데, 이 소설을 원작으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각색하여 제작한 1971년 SF 영화다. 1968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차기작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선 모노리스라는 모티프를 통해 인류가 폭력성을 깨달았다고 표현한다. 스탠리 큐브릭은 인류의 '내재한 폭력성'이란 걸 더욱 끄집어내어 영화로 표현했다. 리듬감 있는 편집, 예술적인 미장센, 다이내믹한 연출을 바탕으로 과도한 폭력과 선정적인 요소들을 다뤄 스탠리 큐브릭이 제작한 영화 중 최고의 문제작이 되었다. 영화의 포스터를 봐라, 이미 포스터부터 성적인 요소를 대놓고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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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청소년인 알렉스(말콤 맥도웰 분)와 그의 패거리는 마약을 섞은 우유를 마시고 가택침입, 절도, 강간 등의 폭력을 저지른다. 알렉스는 수감된 후 감옥에서 빠져나와 다시 자유를 얻기 위해 '루도비코 갱생 프로그램'의 실험 대상자로 자원한다. '루도비코 실험'을 통해 알렉스는 과연 폭력적인 본능을 치료할 수 있을까?

 

ⓒ Warner B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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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스는 패거리와 함께 마약을 탄 우유를 마시고 초특급 폭력(Ultra-Violence)를 저지른다. 우유란 인간이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마시는 것 아니던가. 즉, 폭력을 저지르기 전 우유를 마시는 행위는 알렉스의 천부적인 악성을 나타낸다. 노숙자를 폭행하고, 차를 훔쳐 타고, 어느 한 작가의 집을 침입하여 작가를 폭행하고, 작가의 아내를 강간하고, 패거리 중 반기를 드는 일원을 폭행하여 반기를 지워버리고, 마침내 사람을 살인하는 지경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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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알렉스의 폭력성과는 별개로 그는 베토벤 음악을 듣고, 밝은 톤의 방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 알렉스와 패거리가 폭력을 저지를 때, 어둡고 긴장되는 음악이 아닌 밝고 경쾌한 클래식 음악이 나온다. 동시에 알렉스는 웃는다. 단지 쾌락에 의한 폭력을 저지른 것이다. 이런 무제한적인 폭력을 통해 인간이 숨기는 본능, 욕망을 표현한다. 그리고 알렉스의 자유로운 폭력 행동은 인간의 어느 한 개성과 자유의지를 나태내기도 한다. 폭력이란 폭력은 맘껏 저지르면서 어울리지 않게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듣는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는 것 또한 역설적이다. 이런 역설적인 부조화를 통해 알렉스의 폭력성에 관해 이성적인 관찰을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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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스가 인간이 숨기는 본능, 폭력과 파괴적인 본능의 결정체라면, 그걸 제재하는 측의 폭력이 존재한다. 이 영화는 두 형태의 폭력을 대조시킨다. 인간의 폭력과 정부의 폭력이다. 정부 측은 알렉스의 폭력성을 제거하기 위해 루도비코 실험을 진행한다. 알렉스에게 폭력적인 영상을 강제로 시청하게 하고, 그런 영상에 베토벤 음악을 씌워 베토벤을 들을 때마다, 폭력을 떠올릴 때마다 폭력에 대해 거부감을 들게 한다.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알렉스는 폭력에 대해 거부감을 느껴 구역질을 하는 등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놀랍게도 우린 알렉스의 고통을 보며 어딘가 모를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정부는 알렉스라는 인간의 욕망, 개성과 자유의지를 세뇌를 통해 철저히 파괴한 것이다. 어찌 보면 정부 권력에 의한 조직적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정부는 인간의 악의를 없애기 위해서라면 반인륜적인 방법이 동원되어도 괜찮은 것인가? 악은 정말로 교화될 수 있는 것인가? 우린 정부의 모습에서 법철학적인 관찰 및 의문을 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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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스가 루도비코 실험 이후 고통 때문에 죽음을 기도하자 비윤리적 실험이라는 여론이 일었다. 정부는 알렉스를 다시 되돌렸고, 알렉스는 다시 폭력성을 되찾게 된다. 알렉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본성 자체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은연히 드러낸다. 정부의 폭력은 인간의 자유의지, 본성을 이길 수 없다는 걸 표현한다. 결국 '악', '폭력'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평범하고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본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단지 그런 본성을 어떻게, 어떤 욕망으로 표출하느냐에 따라 인간 개인의 폭력이 될 수 있고, 국가, 정부, 권력에 의한 조직적 폭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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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악, 그리고 폭력이라는 인간의 본성이 보편적으로 내면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린 그런 인간의 본성이 똘똘 뭉친 알렉스가 되지 못한다. 권력에 의해 그 본능, 본성이 억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렉스같이 인간의 본성인 폭력을 맘껏 표출할 수 있었다면, 이미 세상은 지성의 시대가 아닌 폭력적으로 사냥을 하고 다니는 동물의 왕국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권력은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기 위해 인간의 본성인 폭력을 사용한다. 하지만 최소한의 인간의 개성과 자유의지를 지켜줄 정도의 폭력일 뿐. 루도비코 실험처럼 비윤리적이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빼앗으며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판단을 흐릿하게 할 정도의 과도한 폭력일 경우, 알렉스같이 오히려 역으로 인간의 본성인 폭력이 더욱 표출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인간의 본성을 잘 억누를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이 권력층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단순 폭력적인 영화가 아니다. 선악이라는 개념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논쟁거리를 불러온다. 우리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고,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지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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