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00년 전 지구의 인구수는 5억 명이 살았고 인류가 하루에 소비한 에너지는 약 13조 칼로리였다. 현재 지구의 인구수는 약 70억 명이 살고 인류가 하루에 소비하는 에너지는 약 1500조 칼로리를 소비한다. 이렇듯 인류는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류의 급속한 발전을 통해 과학혁명이란 것에 대해 알아볼 것이며 이러한 과학혁명을 토대로 현재 사회에서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현대 과학이 급속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무지를 인정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의 전통지식은 무언가를 새로 발견할 필요가 없었으며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지식은 무의미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무지를 인정하고 새로운 지식의 획득을 목표로 삼아 관찰을 하여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이론을 창작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론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에 현대 과학이 급속하게 발전할 수 있었다.

 

ⓒ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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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사회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자본주의의 교리이다. 신용이라는 타이틀로 우리는 기업과 은행이라는 것이 생긴다. 은행은 경제 전체를 살아남게 하고 신뢰 위에 세워진다. 그리고 모든 기업은 신용이라 불리는 특별한 상상 속의 재화로 이루어져 미래를 비용으로 삼아 현재를 건설하게 해준다. 이러한 경우를 채권이라 말할 수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왜 신용이란 것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과거의 사람들은 미래가 현재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용은 미래를 비용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신용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가 신용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진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진보는 무지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연구에 자원을 투자한다면 나아질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에 신용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과학과 산업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먼저 자신에게 시간표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학교의 시간, 공장의 시간, 병원과 정부기관의 시간 그리고 대중교통 시간 등 우리는 시간표라는 꼬리표에 쩔쩔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가족과 공동체가 붕괴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약한 국가와 시장, 개인이 강한 가족과 공동체를 만들었다면 현대는 강한 국가와 시장, 개인이 약한 가족과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예전에는 자녀들에게 간병을 맡기고 노후를 맡길 수 있었지만 현대에는 돈만 있다면 간병 맡아줄 사람 따로 있고 노후를 맡아줄 사람이 따로 있다. 현대 국가에서는 가족이나 공동체가 아닌 개인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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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과학과 산업혁명을 통해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많은 학자들이 답하기 어려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객관적 조건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객관적 조건이 극적으로 좋아져도 불만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편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객관적 조건이 높아지면 기대가 커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 항상 “삶이 나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고 답을 찾기 어려워한다. 그럴 땐 질문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나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라는 질문으로 바꾼다면 그때 우리는 답을 찾아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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