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직접적인 전쟁이 없는 대립 상태인 냉전 체계에 돌입했다. 냉전 시대의 치열한 이념 전쟁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개념은 ‘프로파간다’로, 주로 이념·사상을 주입하려는 의도를 가진 선전 행위를 말한다. 이는 주로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는 매체인 신문, 영화, 라디오 등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졌고, 반공으로 불리는 하나의 질서,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프로파간다로 대표되는 냉전의 잔상은 문화를 지배하는 문화 냉전으로 이어졌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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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냉전은 여러 미디어를 통해 진행되었는데,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건 바로, ‘영화’다. 영화는 우리 생활 속에 자연스레 들어와 있고, 남녀노소 상관없이 영화를 즐긴다. 또한, 우리는 영화를 보고 감동, 분노, 기쁨, 슬픔, 통쾌함, 안타까움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영화가 가진 감정이라는 무기를 앞세운다면 영화가 전달하는 생각, 의도 등을 받아들이게 만들 수 있다. 관객이 감정에 휩쓸려 쉽게 동요하게 할 수 있고, 제작자의 의도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냉전에 영화를 이용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문화 냉전의 상황에서 영화는 적극적으로 이용되었다. 할리우드에선 선전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전쟁 영화뿐만이 아니라 교묘하게 반공적 메시지를 담은 스파이 영화, 공상과학 영화들이 등장했다. 영화는 주로 주인공인 영웅, 그와 대적하는 악당으로 나뉘며 영웅은 절대적 선함, 정의로운 이미지를 취하고 악당은 영웅과 대척점에 있는 비열하고 저열한 이미지를 취한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는 당연하게도 영웅인 미국, 악당인 소련을 그려내고 프레임을 씌운다. 또, 스파이 영화는 내부의 적, 즉, 우리 곁에 숨어있는 공산주의자·자본주의에 협조적이지 않는 자를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공상과학 영화는 외계인의 침략에 전쟁, 공산주의를 비유하는 등 가상의 적을 생산하여 공포를 내면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는 사회에 공산주의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심었고, 사회주의적 사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를 양산하는 것에 일조했다.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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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반도에서는 영화라는 미디어가 어떻게 문화 냉전에 이용되었는가? 한국의 영화는 미국의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 미국의 대중문화 감시하에서 영화는 문화 냉전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미국의 감시하에 미국의 문제를 드러내거나, 반공 취지에 어긋나는 영화들은 한국에 수입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국 대중은 미국과 국가가 ‘허락’한 영화들만 보게 되었고, 그를 통해 편향된 시각이 길러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러한 미국의 영향권 속에서 영화는 점점 미국을 닮아갔다.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며 적을 무찌르는 영웅 서사, 내부의 적을 무찌르는 간첩 소탕 서사, 자본주의와 자유를 홍보하는 서사를 담은 영화가 나왔고, 이들은 공산주의, 사회주의로 대표되는 적에 대한 혐오와 친미 감정을 담은 문화를 생산해냈다. 영화는 그렇게 대중의 감성, 마음(heart)을 자극하며 냉전 감정을 키워나갔다.

이승만 정권기에 <운명의 손>, <성벽을 뚫고>와 같은 반공영화의 효시가 된 영화들이 등장했고, 군사정권의 등장 이후엔 반공영화가 쏟아졌다. 물론 그 배경에는 정권의 요구가 있었다. 국가의 검열 안에서 <5인의 해병>, <돌아오지 않는 해병>, <빨간 마후라>, <증언> 등의 많은 반공영화가 탄생했고, 전쟁, 첩보, 멜로와 같은 다양한 장르와 결합해 나타났다. 특히 이산 멜로드라마는 반공을 직접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의 비극을 통해 우회적으로 반공사상 고취에 앞장섰던 장르였다. 미래 세대인 어린아이들을 타깃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똘이장군> 시리즈는 북한을 돼지, 괴물로 묘사하는 등 매우 직접적으로 반공정신을 강조했다. 이런 똘이장군의 인기는 아이들에게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에 큰 역할을 했다.

이런 반공영화의 황금기에는 당연히 국가의 검열과 강압도 심했다. 반공법을 위반한 영화감독의 처벌은 물론, 대종상에는 아예 ‘우수 반공영화’ 부문을 만들어 시상하기도 했다. 영화 <오발탄>은 노모의 “가자, 가자”라는 대사가 북으로 가자는 말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문제가 되었으며, 다른 영화들도 북한을 인간적으로 그리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렇게 반공영화는 영화계를 장악했고, 대중들의 하트와 마인드를 자극했다.

다음 시리즈인 <영화는 어떻게 문화 냉전에 이용되었는가#2>에는 현재까지 이어져있는 반공 영화의 연장선과 시대적 변화, 문화 냉전에 이용된 영화계에 대한 비판 등으로 글을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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