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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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스 스피치’는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에드워드 8세에 이어 왕이 된 버티(조지 6세)가 말더듬을 극복하고 군중 앞에서 연설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다. 어렸을 때부터 ‘말더듬이’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기 때문에 유능하다는 치료사는 다 만나보았지만 진전이 없는 탓에 버티는 치료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은 나을 수 없다고 끝없이 단정 지었다. 

버티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는 편안하게 책을 읽어나가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읽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수십 년간 주위 사람들에게 그가 ‘말더듬이’라는 단어로 규정되어 온 결과로,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행동이었는데, 어떤 대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규정해버리면 그 대상에 덧씌워진 의미는 실재가 됨을 표현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말을 못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결국 남들이 보는 '말더듬이'로 자아가 변해간 것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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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는 누군가를 제한시키고 억제시킬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로그가 ‘박사’와 ‘전하’라는 호칭을 거부하고 서로 이름을 부르도록 요구한 것은 서로의 친밀도와 신뢰를 쌓고 말하기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또 치료는 꼭 로그의 치료실에서만 이루어졌는데, 이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전달하는 메시지 뿐 아니라 공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치료 방법이나 알려달라고 했던 버티에게 표면적인 문제만 해결하길 바라는 것이냐며 '목 근육도 많이 풀고 어려운 문장으로 혀를 단련하면 되겠네요.'라고 한다. 버티가 낫기 위해서는 로그 뿐 아니라 자신을 믿어야 함을 알았던 것이다. 자신과는 맞지 않는 치료법이라며 집으로 돌아온 버티는 로그에게 받은 녹음본에 책을 유창하게 읽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제대로 해보기로 결심한다.

 스피치 행위 속에는 한 사람의 자아가 포함되어 있다. 그는 어렸을 때 왼손잡이인데도 억지로 오른손으로 모든 걸 하게끔 강요받고, 안짱다리를 고치기 위해 보철을 대야 했으며, 심지어 유모의 냉대를 받는 등의 억압된 환경에서 자라왔다. 버티는 당시 자신의 의견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이 점이 말을 더듬게 되는 행위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의미의 조정관리 이론에서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문화와 자아를 무시해버린다면 의미의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후 중재나 치료를 필요로 한다고 설명한다. 로그를 만나기 전, 많은 치료사들은 그의 경험들과 자아를 완전히 무시하고 기술적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에 치료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치료를 거듭하면서 대화 중간에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고, 욕을 중간에 섞어서라도 소리내어 말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욕은 한 사람의 일면일 뿐이지만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버티에게 이 방법은 치료 동안 편안함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형의 퇴위는 곧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막고 싶다는 내용의, 어쩌면 사적인 이야기를 로그에게 털어놓았다. 로그는 그의 가능성을 보고 형을 능가할 수도 있다며 자질에 대해 조언을 해주지만 버티는 버럭 화를 낸다. 버티에게는 그 부분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이었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예측한 정도보다 위반됐을 때 순간적인 각성이 일어난다. 호주의 양조장 아들인 로그는 평민 중의 평민이다. 그런 사람이 왕이 될지도 모르는 자신에게 설교를 한다고 받아들임으로써 관계는 한순간에 멀어지게 되었다.

그날 밤, 로그가 부인과 나누었던 대화 중 “크게 될 사람인데 말을 안 듣는다.” / “크게 되기 싫은가 보지. 당신 욕심일지도 몰라.” / “… 내가 선을 넘었네.”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저 버티와 로그, 서로가 예측했던 상황의 대화 정도가 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담감으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과 그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주고자 한 사람일 뿐이었는데, 어느 한쪽이라도 그 정도가 다르면 이렇게 엇갈리기 마련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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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군중들이 새로운 지도자를 간절히 바랬던 것뿐 아니라, 훌륭한 아버지가 국가를 다스리는 것을 보면서 자란 버티의 입장으로서는 자신을 더욱 과소평가하게 만들었다. 커뮤니케이션으로 생겨난 자아의 문제점은 개인이 혼자서는 극복해 내기 쉽지 않다. 로그가 대화를 시도하고 친밀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박사도 아니고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가도 아니었지만 다른 치료사들과 달랐던 점은 버티가 살아온 환경과 경험, 감정을 이해하려 든 점이다. 결국 로그는 버티가 군중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성공적인 연설을 하게 만들었다.

 영화 마지막에 ‘로그와 버티는 평생 친구로 지냈다.’라는 문구가 인상 깊다. 거리감을 좁힐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왕과 평민, 말더듬이와 치료사, 이 둘 사이가 대화를 통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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