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다른 것 같지만 같은 게 참 많다. 정치체제, 역사, 문화, 언어가 모두 다른데 갖고 있는 정보가 일치하는 것처럼 말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언론학에서 잘 알려진 몇 개의 이론을 통해서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의제설정 이론, 인코딩, 정보의 2단계 유통 등이다. 우리가 공통적으로 의지하는 대상은 영미권 매체다. 특정 주제에 관심이 높은 이유도 이들이 우선순위로 보도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그들은 특정 프레임을 씌우고, 다른 국가의 반응 역시 영미 언론을 '통해서' 본다. 다른 관점을 접하기도 어렵다. 그렇게 정보가 닮아가는 것이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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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는 힘이고 돈이 된다. 그렇지만 힘과 돈이 없으면 정보를 생산할 수 없다. 특파원과 정보요원을 파견하는데 경비가 많이 든다. 그 경비를 감당할 수 있는 국가 중 하나인 미국은 전 세계에 특파원을 파견해 왔다.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미국은 주요 협상을 진행하고 대외 정책을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 또, 수많은 정보 복합체 기관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이들은 불법 감시, 도청도 서슴지 않지만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정보 인프라는 전신에서 무선, 라디오, TV 방송, 인공위성, 인터넷으로 발전하며 구축되어 왔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막대하다. 금융거래, 정보 서비스, 방송 등을 통한 수익 사업은 물론 적대국을 감시하고, 사용자의 정보를 이용하고, 또 고급 기밀 정보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이 정보에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보를 가져야 유리하다. 유리한 고지 선점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일을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기 위해 정보를 활용한다. 이를 위해 미국이 수많은 위장 정보기관, 프로그램을 심어 놓았고, 그렇게 미국은 정보를 쥐고, 힘을 쥐었다. 세계의 경제질서, 안보질서와 마찬가지로, 정보 질서도 힘이 곧 질서였다. 우리나라는 힘이 없는 국가가 아니다. 정보를 미국에 의지하는 자세를 버리고, ‘정보주권’을 생각하며, 이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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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 어려운 세계의 질서만이 아니다. 정보가 힘이 되고 필요한 건 우리와 같은 일반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무슨 분야든지 많이 알수록 유리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정보가 흘러넘치는 21세기에선 이제 정보를 거르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의제설정 이론에 따르면, 국민은 언론이 우선순위라고 정해주는 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 현안이 된다. 평소 관심 없던 사람도 눈여겨본다. 그렇게 모두가 관심을 가지면 문제를 풀기 위한 압박이 생긴다. 이런 의제설정 이론의 예시로 ‘평화의 댐 사건’이 있다. 평화의 댐은 민주화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한 꼼수로, 북한이 금강산 댐의 물을 일제히 방류해 서울을 물에 잠기게 만든다는 주장이었다. KBS가 앞섰고 다른 방송과 신문이 뒤따랐다. 건설부 장관을 비롯해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이 총동원됐다. 국민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성금을 모았다. 그렇게 민주화가 중요한 게 아니고 북한의 공격을 막는 게 우선순위가 됐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언론이 주목하고, 우선순위라며 밀어주니 믿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과거에는 언론이 거의 유일한 소통의 창구였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지금 저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평화의 댐을 믿지 않을 수 있을까? 거짓 정보를 거를 수 있을까?

검색만 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시대, 우리는 꾸준히 구축되어 온 정보 질서 덕분에 많은 정보를 편리하게 얻고 있다. 하지만 그 정보가 올바른 것인지, 경계하고 확인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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