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평론

<기생충>은 개봉 당시 한국인들에게 대한민국의 현실을 드러내는 작품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이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며 한국 영화판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외에도 국내외 할 것 없이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 영화는 부유층과 빈곤층의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묘사된다. 예를 들어 계단이 있다. 등장인물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곧 신분의 상승과 하락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회 현실을 고발하는 것보다 한 가장의 무능력함을 더 강하게 비꼬고 있다. 영화에서 말하는 ‘기생충’은 동익 네 집에서 몰래 지내는 기택 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우, 기정, 충숙에게 의존하는 기택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만약 구조적 불평등에 가장 크게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면, 동익 네 집을 더 악랄하게 그려냈을 것이다. 영화에서 동익 네는 딱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다. 오히려 선을 지킨다면 친절하게 대해주고, 가정부가 하루 종일 집에서 생활하며 밥을 많이 먹어도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관객은 이 영화를 보면서 오히려 동익의 죽음과 그 가족의 트라우마에 더 안타까워할 수 있는 반응도 나타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봉준호 감독이 정말 구조적 불평등과 상류층을 비판하려고 했다면 등장인물들을 다르게 묘사했을 것이다.

 

 

출처: 씨네21
출처: 씨네21

 

 

기택을 비꼬는 장치는 영화 내내 등장한다. 영화 초반, 기우는 와이파이를 찾아 돌아다닌다. 기정 역시 기우를 따라다니며 와이파이를 잡으려고 아등바등한다. 충숙 역시 집안일을 하고 있다. 그들과 다르게 기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누워만 있다. 충숙이 툭 건드리니 그제야 일어난다.

 

 

피자 박스를 접을 때도 기우, 기정과 충숙은 영상을 보며 접는 방법을 따라 한다. 반대로 기택은 초점 없는 눈으로 아무렇게나 박스를 접어 뒤에 쌓아둔다. 나중에 찾아온 피자가게 사장의 대사는 노골적으로 기택을 비꼰다. “넷 중의 하나는 불량인 거지.” 여기서 말하는 ‘넷 중 하나’는 기택이 접은 피자 박스면서도, 기택을 뜻한다. 기택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각자도생할 만큼 각자 능력치가 있다. 기우는 명문대를 목표를 하고 있고, 기정도 미대를 목표로, 충숙은 한때 선수였다. 기택은 없다. 그 가족의 불량이 기택이다. 그에 비해 기택의 성격은 지나치게 낙천적이다. 피자가게 사장과 급여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충숙과 박스를 옮기고 있는 기우와 기정을 뒤로, 기택은 그저 TV를 보는 것처럼 가만히 뒷짐 지고 그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다.

 

 

다른 장면에서도 기택의 무능력함과 낙천적 성향이 드러난다. 기택은 자신이 일을 구하려고 돌아다니지 않고, 기우가 동익의 운전기사로 들어오게 하게끔 기다리고만 있다. 충숙을 가정부로 데려오기 위해 쓴 대본도 본인이 직접 고민하면서 쓰지 않고 아들인 기우가 손을 봐준다.

 

출처: 씨네21
출처: 씨네21

 

 

동익네가 캠핑하러 가서 집이 비어있을 때도 기택은 거짓말을 해서라도 번 돈으로 어떻게 다른 일을 구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집이 자신들의 집 같지 않냐는 허무맹랑한 말을 늘어놓고, 술판을 벌인다. 폭우가 내리고 쫓겨나듯이 동익의 집에서 도망친 이후 기택, 기우, 기정이 피난대피소에 누워있을 때, 기우가 문광네를 지하실에 가둔 것에 관해 계획이 있냐고 질문한다. 기택은 계획이 없다고 답한다.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이 대목에서 기택이 얼마나 낙천적이며 현실을 외면하고 가정을 외면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영화 후반에서도 죽어가는 기정이를 보면서도 기택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오히려 차 열쇠를 내놓으라고 소리 지르는 동익에게 차 열쇠를 넘겨준다. 그래 놓고 동익의 행동에 자격지심을 느껴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한다. 기택은 살인의 책임을 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시 그 집으로 숨어들어 가 기생충이 되길 자처한다. 그러고는 마냥 기우가 언젠가 모스부호를 읽기를 바라면서 매일 밤 모스부호로 신호를 보낸다. 이런 기택을 가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봉준호 감독이 기택을 비꼬려고 한 무능력한 가장의 장치는 영화 결말에서도 나온다. 기우는 기택에게 ‘계획을 세워볼까 합니다’라고 편지에 쓴다.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며 돈을 벌 거라는 기우의 다짐을 엿볼 수 있다. 계획 없이 가만히 누워 있던 기택과 다른 모습이다. 또한, ‘아버지는 그냥 올라오시면 됩니다’ 대사와 함께 부자가 되어 집을 산 기우와, 지하실 계단을 올라와 기우를 끌어안는 기택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도 기택이 스스로 돈을 벌어 지하층에서 탈출한 것이 아니라 기우가 시켜준 것이다. 이렇게 기택이 얼마나 낙천적이고 의존적이며 무능력한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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