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경'을 보고

ⓒ 네이버 영화
ⓒ 네이버 영화

   핸드폰이 터지지 않고, 민박집 직원이 잠을 깨우며, 매일 아침 다 함께 알 수 없는 동작들로 이루어진 체조를 하는 하마다 민박집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하고 평화롭다. 주인공인 타마다가 왜 이 섬에 오게 되었는지, 왜 여기서는 빙수 값을 받지 않는지, 심지어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등등 수많은 궁금증에 대하여 두루뭉술하게 대답해 주는 이 영화는 선뜻 보면 관객에게 불친절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정도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서로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변해 주지 않는다. 말을 돌리거나 모른다고 대답한다. 등장인물도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고, 관객들도 등장인물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나 또한 처음에는 답답하다고 느꼈으나 영화에 빠져드면 빠져들수록 그냥 이 정도로만 알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궁금하긴 하지만 괜찮다. 이게 이 영화의 매력이기 때문에.

 

ⓒ 네이버 영화

   단 한 가지, 내가 확신하는 것이 있다. 만약 일상 곳곳에 비어 있는 여백을 영상으로 표현한다면 이 영화일 것 같다는 것이다. 영상미뿐만 아니라 대사 하나하나에도 여백이 짙게 묻어나있다.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2분 정도 참고 가면 거기서 오른쪽입니다", "중요한 건 조급해하지 않는 것. 초조해지지 않으면 언젠가 반드시" 등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도  여러 번 곱씹게 되는 대사들이 삶의 여백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하게 만든다.

   주인공인 타마다 또한 이 섬에서 여백을 마주하는 법을 알았기에 치열하게 쫓기던 삶에서 벗어나 느긋이 사색과 휴식을 즐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영화가 진행될수록 편안하게 변하는 타마다의 표정을 보며 나의 표정도 타마다와 함께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분명 재미없다는 초반의 느낌과 달리 영화가 진행될수록 재미없다는 느낌을 즐기는 나의 모습을 스스로 알아챌 수 있었다. 재미없음을 즐긴다니,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과제, 취업 준비, 알바 등등 일상의 모든 순간순간이 큰 짐으로 느껴지는 요즘 문득 나도 이 섬으로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 바다 앞에서 아침마다 이상한 체조를 하고, 돈이 아닌 진심이 담긴 선물로 빙수 값을 지불하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무겁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사색하는 게 일상인 이 이상한 섬으로 떠날 수 있다면 난 지금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훌쩍 향할 수 있을 것 같다.

 

ⓒ 네이버 영화
ⓒ 네이버 영화

  많은 후기들이 이 영화를 힐링, 행복, 휴식 등의 단어들로 설명하고 있지만, 나는 딱히 무언가로 정의 내려서 설명하고 싶지 않다. 한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울림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저 당신이 가장 힘들 때 이 영화를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현실에 지쳐 있거나, '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느끼는 것이 많을 것이다.

  아, 추가로 덧붙이자면 이 영화를 보다 문득 잠에 들어도 충분히 괜찮다.

 

 

저작권자 © MC (엠씨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