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보 홍수에 둘러싸이는 것 이상으로 자신도 모르게 많은 잡일에 시달리고 있다. 카페에서 다 마신 음료 잔을 치우는 일 뿐 아니라 주유도, 가구 조립도, 최저가 검색까지, 너무 많은 역할을 직접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늘 바쁘다.

크레이그 램버트의 '그림자 노동의 역습'은 이에 대한 정의와 사례들을 보여준다.

출처 : 네이버 도서

 


모두에게 시간이 곧 돈이라고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듣던 빈번한 요청으로는 물, 탄산음료, 피클 등의 리필이었다. 테이블의 벨을 눌러 직원에게 “리필은 어디서 해오면 되나요?”라고 셀프서비스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물어보는 고객도 있고, 직원이 있는 곳까지 걸어 나와 쭈뼛쭈뼛 말을 거는 경우도 있다. 근무하던 식당에서는 모든 서비스가 직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제공되는 형태였기 때문에 고객이 셀프로 이용할 수 없다. 물론 식당 어디에도 ‘셀프’라는 문구는 없다. 방식은 가지각색이지만 대다수의 손님들이 셀프서비스에 이미 익숙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정도는 별일 아니니까’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정작 월급을 받고 그 일을 하는 직원이 있고, 반면 고객은 아무런 대가를 얻지 못한다.

 

 이번에는 고객의 입장으로 키오스크와 ‘셀프’ 문화를 바라보자면, 최근 급격하게 늘어난 키오스크 이용으로 불편을 겪는 세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반면 이는 키오스크 이용에 적응한 세대들은 그림자 노동을 기꺼이 처한 상황으로도 볼 수도 있다. 패스트푸드점에서의 키오스크 이용 경험을 예로 들자면 팬데믹을 기점으로 대면 주문 방식에 감염 위험이 있으니, 기계를 이용해달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주문을 하면서는 납득이 갔지만, 사실 그 문구 하나로 우리는 주문만이 아니라 식당 내 음식 제조를 제외한 여러 과정의 일들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할애하여 수많은 음식 중 하나를 찾아 클릭해, 여러 결제 방식 중 하나를 골라 결제하고, 포인트 적립을 하고, 자리까지 음식을 직접 갖고 온 뒤 재활용이 되는 용기까지 분류해서 버린다. 어떻게 보면 이 일은 고객이 돈을 내면서도 노동을 하는 과정일 뿐이다. 고급 식당보다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지는데, 테이블의 순환이 빠르고 직원의 직접적인 서비스 제공이 거의 없다 보니 홀의 청결도 또한 비교적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 직원의 일 중 하나를 떠맡게 된 고객들은 자리가 더러워도 치워달라는 말 대신, 물티슈를 받아 직접 테이블을 닦는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보자면 키오스크 이용에 불편을 겪는 세대에게는 스마트 기기 사용의 적응만이 문제가 아니다. 주문만 기계로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뒤에 서있는 사람들의 눈초리도 따갑고, 음식을 서빙해주는 직원도 없는데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건 직원에게 가서 따로 물어봐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모든 과정이 노동으로 느껴질 뿐이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패스트푸드점을 방문할 때면, 방금까지만 해도 난 돈을 번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고객과 대화를 나누고, 먹고 간 음식과 테이블을 정리했는데 여기서는 돈까지 써가며 또다시 일하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그림자 노동이라는 개념을 알기 전까지는 누군가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일반 식당에서도 주문을 받으러 온 직원에게 물을 요청했을 때 ‘물은 셀프예요~’라고 쌀쌀맞은 대답을 듣는 상황에 처하면 괜히 눈치가 보일 때도 있다. 직원이 물을 가져다주면서 더 필요하면 셀프로 이용해달라고 안내를 하는 방법도 있고, 셀프로 고객에게 요구하는 일들은 직원이 한 번쯤 대신해서 못할 일도 아닌데 말이다.


 고객들의 그림자 노동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은 최근 트렌드와도 맞닿아있다. 우선 주 소비층의 변화이다. 스마트 기기의 사용이 자연스러워진 소비자는 ‘서비스에 대한 자율성’을 얻게 됐지만, 자신의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음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또한 이들은 기계에 대한 거부감이 적기 때문에 사람과의 경험에서부터 오는 저항을 최소화시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도 있다. 다음으로는 정보기술 발전과 비대면으로의 전환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정보기술 발전과 도입 속도가 빨라지며, 자연스럽게 기업들도 일을 떠넘기며 이전에는 직원이 고객에게 직접 제공하던 서비스까지 일정 부분 고객 스스로 처리하도록 하며 인건비를 줄일 수도 있게 되었다.  우리는 보안상의 이유로 웹사이트의 비밀번호를 주기적으로 바꿔야 하고, 공항 수속 시 수하물을 승객이 직접 부치고, 문의 사항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 홈페이지의 자주 묻는 질문 목록을 살펴봐야 한다.

 

 이는 일자리를 사라지게 할 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해야 할 일이 늘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인 이러한 변화는 그림자 노동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림자 노동의 역습'에서는 소비자가 셀프로 하는 일이 많아지면 자율적 사고방식을 추구하게 되고, 스스로 자동 기계 장치가 된다고 언급한다. 전화 공포증(call phobia)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사람과의 교류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결과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여러 생각을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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