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성을 찾아서

“북극성?”

첫 단어를 보고 이게 저널리즘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논문을 읽어보며 왜 논문 제목을 북극성이라고 지었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바로 좌표를 찾는 것이었다. 길 잃은 자들이 북극성을 좌표 삼아 앞으로 나아가듯이, 언론 또한 현재 그 좌표를 찾는 탐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언론이 과연 공정성, 투명성, 공익성 등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하고 있을까? 항상 정치 영화를 보면 언론사가 등장하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신념에 가득 찬 개인 언론인들 같은 경우 항상 고난에 부딪힌다. 제보자의 사망, 데스크의 압력, 기사를 낸다고 해도 더 큰 이슈를 터뜨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쉽게 잊혀진다. 언론사는 정제계와 관련이 깊다. 각종 비리를 일으켜 정재계와 손을 잡는 모습들이 영화에서 쉽게 풍자되는 것이 과연 현재 한국 언론사가 여, 야를 대변하고 옹호하는 것이 아닌, 공정성과 투명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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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

언론이 막강한 힘을 가졌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만큼 영향력이 큰 언론사가 오보 기사에 대해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언론사 입장에선 기사를 삭제하고 정정 기사를 내면 되지만 그로 인해 당사자, 즉 피해자들은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더불어 SNS의 급격한 이용률 증가로 인해 현재 네트워크 상에선 가짜 뉴스가 판을 친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유입률을 높인 뒤 기사를 보게 만든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할당량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보도자료를 베껴가며 비슷한 기사들이 하루에 많게는 수십 개씩 작성되어 올려진다. 가장 중요한 팩트체크를 하지 않은 채. 근데 의문점이 들었다. 이 기자들이 처음부터 언론인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이런 기사들을 쏟아낼 줄 알았을까? 작은 언론사의 경우 이런 일들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위에서 시켜서? 자신의 언론사의 이름을 알리려고? 예컨대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그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아닌, 상부의 압력이 클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표한 언론 개수는 참여 언론사만 104개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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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SNS에서 활동하는 인터넷 언론까지 포함한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좁은 땅덩어리 내에 이렇게 많은 언론사가 즐비하여 있으니 그 속에서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오가며 기사를 작성할지 경험해 보지 못한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일명 “기레기”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합성어이다.

이렇게 기레기란 합성어가 이젠 사람들의 인식 속에 보편화되어 있다는 현실이, 공정성과 공익성을 추구해야 하는 언론사가 영화에서 그러지 못한 모습으로 풍자되는 이 현실이 까맣고 보이지 않는 밤이며, 우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어둠 속에서 북극성을 좌표 삼아 탐사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논문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논문에 제시된 바로는 언론에게서 요구되는 가장 우선적 가치는 ‘공정성’이라고 나와있다. 

 

물론 모든 언론사들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이런 신념을 지키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어디서부터 이런 신념들이 점차 옅어졌을까, 1970년대? 80년대? 물론 정부의 개입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론사가 언제부터 각 당을 옹호하는 대변인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by전의현, 최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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