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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글은 프로파간다, 즉 선동에 관한 글이다. 이 글의 문제 제기 부분에서는 북한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에 대해서 말한다. 어버이 수령에 대한 찬가를 이야기하고, 북조선이 걸어가는 길은 어버이의 나라로 가는 길이다.라고 말한다. 북한에서의 노래와 음악은 체제 유지와 우상화를 위한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북조선 스스로가 문예의 수단화를 적극적으로 천명한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다른 문예예술을 살펴보면, 그 사명은 당의 사상과 의도를 인민의 심장 속에 심는 것에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살펴보면 무섭게 느껴진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단 한 사람의 우상화와 체제 유지를 위해 이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말이다.

프로파간다라는 ‘실천’은 복수의 진영들이 자기 이념의 정당성과 그 실현 동력을 공중의 지지를 통해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상황의 상수를 이룬다. 현재까지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프랑스 혁명도 그러했고, 1차 세계대전 발발부터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까지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세계대전하면 독일의 프로파간다가 굉장히 기억에 남았다. 히틀러의 연설도 그러했고, 괴벨스 선동도 굉장히 유명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했길래 독일사람들의 생각을 그렇게 바꿨을까? 프로파간다의 힘이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한다.

그다음은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예술의 두 이상에 관해서 이야기하는데, 예술의 정치적 이용을 혐오하는 예술의 예술과, 예술의 올바른 정치적 사용을 추구하는 것이다. 예술의 순수함과 예술은 투쟁의 역사 다라고 하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예술의 정치적 이용을 혐오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예술이라는 것은 파급력이 어마어마한 프로파간다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의 올바른 정치적 사용에 대해서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요소 중의 하나이고, 정치적인 표현을 억압하는 것은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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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써 예술의 문제는,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의견 표출이나 사용을 예술인 개인의 생각을 토대로 진행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예술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모든 예술의 방향성을 국가의 프로파간다로 향하는 것은 굉장히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 이것이 북한이 추구하는 예술의 방향성이다. 프로파간다로서의 예술은 존재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예술은 예술로써, 존재할 때 가장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한 인간의 고뇌와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표현의 자유가 아닐까? 예술은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 상이라고 생각한다. 그 거울을 통제한다는 것은 인간의 사회 자체를 통제하려 드는 행위일 것이다. 개인을 억압하는 행위일 것이며 건강한 사회에서는 이루어지지 말아야 할 행위이기도 하다. 예술은 예술로써 존재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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