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알아?
내가 너한테 반하는 바람에, 우리 별 전체가 네 꿈을 꿨던 거?

  고백한다. 사실 친구에게 추천받은 <지구에서 한아뿐>이라는 책은 별 기대 없이 펼친 책이다. 정정하자면 책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당장 사람과의 사랑도 어려운 나에게 외계인과 사랑을 하는 이야기라니... 어떤 내용이고 어떤 주제인지 감히 짐작하지도 못하겠거니와, 나에게 있어서 외계인이란 이티처럼 이상한 생김새라 어떻게 그런 것과 사랑에 빠질 수 있지?’라는 편협한 생각과, 아무리 외적인 생김새를 뛰어넘는 절대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해도 과연 주인공이 외계인과 진심으로 진짜사랑을 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득 품고 이 책을 펼쳤다.

 

ⓒ 문학동네
ⓒ 문학동네

  낡고 오래된 의류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하는 한아에게는 11년을 만난 애인인 경민이 있다.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경민은 어느 날 유성우를 보겠다며 캐나다로 훌쩍 떠나버리는데, 여행이 끝난 후 미묘하게 달라져 돌아온다. 갑자기 좋아진 젓가락질이라든지, 그렇게나 싫어하던 가지무침을 덥석덥석 집어먹는다든지... 알고 보니 돌아온 건 경민이 아니라 경민의 탈을 쓴 외계인이었던 것이다. 제목 그대로 지구인 ‘한아’와 지구에서 ‘하나’뿐인 그녀를 사랑하는 외계인의 러브스토리가 이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만약 당신이 10년 넘게 사귄 애인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갑자기 멀리 여행을 다녀온 후 태도가 바뀌었고, 사실 자신은 오로지 당신을 만나러 별과 모든 것을 버리고 2만 광년을 거쳐 온 외계인이라고 고백한다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캐나다에서 우주여행권과 애인의 몸을 서로의 합의에 의해 정당하고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교환했고, 당신의 애인은 현재 지구 밖을 벗어나 저 광활한 우주를 여행하고 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계속 생각했다. 만약 내가 한아라면? 한아처럼 애인의 탈을 쓴 외계인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아니, 사랑하기에 앞서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을 수나 있을까? 한순간에 애인을 뺏어간 외계인이 죽도록 미울 수도, 혹은 내 애인이 한순간에 미쳐버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무 연락 없이 홀연히 우주로 여행을 떠나버린 애인의 생각을 물어보기 위해 나도 우주로 보내달라고 냅다 생떼 부렸을 수도 있고.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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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활한 우주 속 너무나 작은 한아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확률 속 우주여행권과 경민의 몸을 바꿀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그 외계인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단지 한아만을 위한 2만 광년의 횡단. 어느 누가 감히 말도 안 되는 광년을 달려 지구로 건너 올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득한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하나의 우주를 품는 외계인이라, 이런 외계인이라면 나 또한 두 팔 벌려 환영한다.

“나는 안 될까. 처음부터 자기소개를 제대로 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더 나은 방법일 것 같았어. 그래도 나는 안 될까. 너를 직접 만나려고 2만 광년을 왔어. 내 별과 모두와 모든 것과 자유여행권을 버리고. 그걸 너에게 이해 해달라거나 보상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아냐. 그냥 고려해달라는 거야. 필요한 만큼 생각해 봐도 좋아. 기다릴게. 사실 지금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괜찮은 것 같아.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이거면 됐어.”

p.95 

 

  암석 광물 덩어리 외계인과 한아의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의 사랑의 모습도 읽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스타인 아폴로를 만나러 모든 것을 놔두고 기꺼이 우주로 뛰어든 주영의 이야기는 전혀 미련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용기를 본받고 싶었다면 모를까. 만약 이 책의 외전이 있다면 아폴로와 주영의 우주 생활 이야기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궁금하잖아!

거인이 휘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쓸리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서인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끊임없이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세계에, 예수와 부처의 세계에,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세계에, 테슬라와 에디슨의 세계에, 애덤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세계에, 비틀스와 퀸의 세계에,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세계에 포함되고 포함되고 또 포함되어 처절히 벤다이어그램의 중심이 되어가면서 말이다.

 

어차피 다른 이의 세계에 무력하게 휩쓸리고 포함당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아폴로의 그 다시없이 아름다운 세계에 뛰어들어 살겠다. 그 세계만이 의지로 선택한 유일한 세계가 되도록 하겠다.

p.37

 

  스타트가 좋다.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지만 예상보다 훨씬 만족한다. 너무나 벅차올라 다음 책을 읽을 때까지도 이 책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긴 하지만, 이 벅차오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렇게 독후감을 적는 것이니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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