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4차 산업혁명의 길

 농업혁명이 인간성을 향한 위대한 도약인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사피엔스’라는 책이다. 그렇다면 농업혁명이란 무엇인가? 수렵 채집 사회에서 곡류를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하여 생산을 하고 정착생활로 바뀐 것을 농업혁명이라 한다. 그렇다면 유발 하라리는 왜 농업혁명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농업혁명이 사피엔스에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는가? 농업혁명을 통해 현대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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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가 농업으로 이행한 것은 기원전 9500~8500년 경 터키 남동부, 서부 이란,에게 해 동부 지방에서였다. 각 지역 환경과 알맞게 중미는 밀과 완두 콩, 남미는 감자, 아시아는 쌀과 수수 등을 수확하였다. 이러한 농업들이 전파되면서 기원전 1세기쯤엔 대다수가 농민이 되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수렵채집 때의 사람들은 농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 보다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다. 또한 식량의 총량은 증가하였지만 식량의 다양성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또한 식량이 대폭 증가하면서 인구가 증가했고 이로 인해 농부들은 수렵채집인들 보다 더 열심히 일하였지만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농부들은 수렵 채집인들과 다르게 구부정하게 농사를 계속하다 보니 척추와 무릎, 목과 발바닥의 장심이 대가를 치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을 부정적으로 본다.


 농업혁명은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을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이다. 하지만 농업혁명은 삶의 질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농업혁명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농업혁명은 식량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자 아이를 많이 낳게 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식량들이 빠르게 고갈되어 식량이 부족해졌다. 그러면서 농부들은 일을 더 많이 하고 열심히 하면 수확량이 더 늘어날 것이고 흉년도 없을 것이라 믿었다. 생산량은 더 증가했지만 아이의 수 또한 같이 증가했다. 그래서 결국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렇다면 계획이 물거품이 된 농부들은 농경을 포기하지 않았는가? 과거에 수렵 채집 방식을 잊었기 때문이다. 또한 수렵 채집 사회로 돌아간다 한들 지금까지 태어난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죽으려고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농업혁명의 사람들은 과거 수렵 채집 사회로 돌아갈 수 없었다.


 농업혁명은 인류에게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주었다고 한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루 동안 식량을 벌어서 하루 동안 식량을 먹었고 저장을 하지 않았기에 재산이 없었다. 그러나 농업사회에서는 미래를 생각해야만 했다. 계절을 기반으로 수확을 통해 풍년인지 흉년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이로 인해 다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농민들은 걱정에 찌들며 살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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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는 농업혁명을 통해 마을을 만들고 마을이 도시가 되며 도시가 왕국이 되는 형태로 발전 해왔다. 이렇게 협력적인 모습을 드러내다 왕국에서 내전 등이 일어나며 협력이 줄어들었다. 이때 나타난 것이 바로 신화이다. 신화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졌다. 사람들의 결속을 이뤄낸 것이 신화이다. 신화를 통해 상상 속의 질서가 사람들을 지탱하며 사회적 규범이 생겼다. 


 농업혁명을 통해 인류는 숫자가 굉장히 중요해졌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숫자가 중요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농업혁명으로 인해 인류는 세금을 걷어야 했고 토지의 개수 등을 알아야 했고 재산의 양을 알아야 했고 데이터를 저장하고 정보를 저장해야 했기 때문에 숫자가 중요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뇌로 저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숫자를 쓰기 시작했다. 또한 인류는 숫자뿐만 아니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농업혁명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던지는 메시지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분명히 인간들은 고민하거나 미래에 대해 생각하거나 허리 숙여 구부정하게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걱정이 없었기 때문에 개개인이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농업혁명은 개개인의 행복을 찾을 수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 아이가 먹고 살 수 있게끔 농사를 지어야 했고 농사가 흉년일지 풍년일지 걱정을 해야만 했다. 또한 미래에 대한 걱정거리들이 너무나도 많이 늘어났다. 그리고 채집 수렵으로 인한 인체의 진화 과정들이 농업혁명으로 인해 모두 뒤바뀌어서 디스크가 걸리고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리고 성차별이라는 차별적 문화가 생겼다. 4차 산업혁명이 과연 인류에게 좋은 발전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농업혁명이 일어났을 때도 결국 인류는 덫에 걸려들었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인류는 혹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덫에 걸린 것은 아닌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은 인류가 일하는 것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후 인류는 일하는 것도 줄어들고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드니 집에 박혀 살게 되고 기본소득을 받아야 되는 삶이 지속되며 인구수가 폭발적으로 저하되는 현상이 오게 되지는 않을까 싶다. 인류가 어떠한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은 조금 더 편하게 살자고 하는 것이지만 이번 4차 산업혁명은 농업혁명의 덫과 같이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결코 4차 산업혁명이 농업혁명처럼 좋은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 좋은 것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농업혁명이란 인류의 발전이 먼저 있었던 사례를 보았을 때 4차 산업혁명에게 던지는 메시지란 4차 산업혁명이 좋은 발전이 맞는 것인지 그리고 개개인의 행복을 찾기 위한 발전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농업혁명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농업혁명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았다. 인류에게 농업혁명은 덫을 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인류는 농업혁명의 계획이 틀어지면서 수렵채집 사회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미 인류는 돌아갈 수 없었다. 만약 수렵채집 사회로 돌아간다면 인류 절반 이상은 죽어야 할 것이며 인류 또한 돌아가기를 거부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이제 어떠한 방식으로 미래를 발전시켜야 하는가? 농업혁명을 어떠한 식으로 발전시키며 인류가 행복을 느끼며 편하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엔 정보혁명을 넘어 4차 산업혁명까지 일어났지만 이것이 과연 인류 개개인의 행복한 삶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야만 할 것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과연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편하기 위해서만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킨다면 인류에겐 크나큰 절망이 다가올 것이라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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