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부터 당신을 사랑하게 될 운명이 아니었을까요 뭉근하게 나를 짓누르는 당신의 눈빛은 그 무엇도 막을 수가 없어서 그리 아리게 다가왔을지도 몰라요
당신을 향해 일렁이는 마음은 소리 없이 강하고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원인 모를 우울감에 빠지기도 해요 누군가를 연모하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을 감정들을 나의 몸 구석구석에 새겨요

어느 드라마의 주인공이 말했어요 아이야 네 눈에는 별이 박혀 있다는 걸 알고 있니

꼭 맞는 말이에요 나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입속에 머금고 몇 번이고 되새겼어요 오롯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대사인 것만 같아요 문득 속이 보이지 않는 수렁 같은 당신의 반짝이는 눈가를 사랑하고 싶어지다가도 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감정의 파도에 빠져 호흡을 가삐 하길 반복하고

나는 문득 머리를 스치는 눈빛에 묘한 전율을 느끼며 차가운 얼음을 입안 가득 머금어요 우득우득 소리를 내며 하릴없이 으스러지는 얼음들 그 속에 당신을 겨누는 감정들을 넣어 모조리 집어삼키고는 조용히 흐느끼며 그 형태를 감상하곤 해요 당신을 더없이 미친 듯이 사랑하고 싶어지는 기분이었어요 당신을 그리지 않고는 한순간도 견딜 수 없게 나를 스스로 옥죄이고

당신이 내뱉는 숨결을 모두 삼키고 싶어요 당신이 주는 숨은 얼마나 달콤할지 감히 상상한다면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화들짝 놀라며 숨고 싶어질 거예요 그러다가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 없어서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 걸까 행복감에 젖었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파도에 허우적대는 날 마주해요 누가 더 깊은 구렁텅이로 날 밀어주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당신에게 더 미치도록 당신은 날 밀어낼 수 없도록 그렇게 깊이 더 깊이 스며들 수 있게

나 가끔은 괴상한 생각을 해요 어쩌면 당신의 입술이 영원한 이별을 말할 순간일 때에도 나는 여전히 당신을 향한 사랑을 말하지 않을까 그 끝은 까만 두려움일지 빠알간 행복일지 전혀 알 수 없어요 일어나지 않을 일을 고뇌하며 점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감정에 휘둘려요 그러나 여전히 당신을 갈구하며 남몰래 눈물짓는 모습이 얼마나 외람되고 우스꽝스러운지 당신은 알고 있을까요

고독하고도 비참한 내 모습을 안쓰러이 여기는 당신은 더할 나위 없는 뜨거운 숨결로 우리의 그림자를 노래하며 나를 다독여요 다시금 울렁이는 속내에 고개를 들면 그때 우리의 흔적은 모두 기억의 파편이 되어 저 멀리 공중으로 흩어지고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남아 외사랑의 저린 흔적들을 온몸으로 받아먹어요 정신을 차려보면 모두 허구일 뿐이겠지만

아주 가끔 우리가 뜨겁게 사랑하는 상상을 해요 손에 닿을 듯 말 듯 유유히 흘러가는 당신의 감정에 짙은 눈물 자국을 남기면서도 지독한 그리움의 냄새는 끔찍이도 행복해서 영원히 그 안에 갇혀 있고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