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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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국민 독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 독서량은 4.5권으로 2019년 조사 때보다 3권이 줄어든 수치라고 한다. 이마저도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합친 수치라서 종이책만 기준으로 한다면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책을 읽지 않게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입시와 과제 등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 학창 시절이 지나고 성인이 되면 평균 독서량이 감소한다. 이런 많은 책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많이 외면받고 있는 도서 분야가 시일 것이다. 수업 시간에 교과서 속에서만 주로 접했던 이 시를 성인이 되고 나서도 꾸준히 읽는 경우를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언급하거나 읊기 시작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시는 문학적 허세를 드러내기 위해서나 지나치게 감성적인 사람들만 좋아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펴낸 이 책 [인생의 역사]가 유독 반가운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시를 잃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여전히 시가 필요한 이유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각 장마다 고통, 사랑, 죽음, 역사, 인생, 반복이라는 주제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국내외 시 여러 편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저자가 평소에 의미 있다고 느꼈던 시들과 함께 그 시와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시화(詩話)인 것이다. <고통의 각>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는 시는 바로 공무도하가이다. 우리나라에서 의무교육 과정을 거쳤다면 배웠을 대표적인 고전시가이기에 익숙한 작품일 것이다. 그런데 이전 수업 시간에 배웠을 때와 이 책을 통해 이 시가를 접했을 때의 감상이 크게 달랐다. 아무래도 시험을 위해 작품을 기계적으로 분석하는 상황과 시 내부로 깊숙하게 들어가 마음으로 느끼는 상황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로 여겨지는 이 시가를 고통이라는 주제와 엮은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머리가 새하얀 미치광이 사나이, 즉 백수광부가 강물을 건너자 그의 아내가 건너지 말라고 애통하게 외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된 시가에 가장 오래된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을 줄 알면서도 강물을 건너는 남편 그리고 그런 남편을 강가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건너지 말라고 소리치는 아내의 모습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떠오른다. 이렇게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대한 이 노래가 저자의 마음에 특별히 와닿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저자의 생각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태어난 직후부터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수천 년 전에 불러진 노래가 수천 년이 흐른 뒤에 세상을 살아가는 누군가가 느끼는 삶의 고통을 이해해 주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시공간과 상관없이 우리가 시를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인간의 마음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어떤 시들에게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다섯 편의 시들 중에서도 유독 인상에 남았던 작품이 바로 이영광 시인의 <사랑의 발명>이었다. 이 시는 살아가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사랑의 다양한 면모들을 그려낸 시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이 시인의 이력이나 작품들을 읽어본 적은 없었는데 이 시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에 깊은 공감이 들었다. 이 시는 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곡기를 끊겠다는 상대방의 사연으로 시작한다. 시의 화자는 그런 상대방의 말에 너무 놀라서 변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화자라도 없으면 삶을 끝내겠다는 누군가를 붙잡는 그 순간에 사랑은 발명이 된 것이다. 이 시를 통해 저자는 사랑과 동정을 두고 입장을 달리한 독일 철학자들 쇼펜하우어와 막스 셸러를 소개한다. 우선 쇼펜하우어는 사랑과 동정이 결국 같다고 주장했고, 막스 셸러는 둘을 혼동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저자는 두 사람의 말은 각각의 진실이라면서도, 본인이 느끼는 진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특정한 요소가 아닌 존재 자체에 대한 동정이라면 깊은 차원에서 사랑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이런 생각에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누군가를 죽지 않고 이 세상에 여전히 살아가게 할 수만이 있다면 그것이 동정이든 사랑이든 큰 문제가 되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수많은 뉴스들을 통해 접한 우리 사회에 소외된 이들이 떠올랐다. 이전보다 복지 환경과 의료기술이 좋아져서 배고프거나 아파서 죽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그 대신에 외로워서 조용히 죽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죽지는 않아도 자신들의 고통과 비참함을 인정받지 못해 좌절한 이들 역시 그늘진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한다고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그들 곁에 함께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사랑은 끊임없이 발견되고 발명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누군가를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사랑을 발견하고 있는지 묻고 싶게 만든 시였다.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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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안의 내용 중, <역사의 선>에서는 유독 인상에 남았던 작품이 바로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 밥 딜런의 노래 가사였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는 제목의 이 노래 가사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오늘날 이 세상을 바라보고 쓴 것 같은 감상이었다. 그런데 이 노래는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인 19631월에 발표한 곡이었다. 노래 제목에도 알 수 있듯이 권력을 향한 저항 정신과 시대의 변화를 갈망하고 기대하는 소망이 곡 전체에 깃들여져 있다. 밥 딜런이 2016년 대중가수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전해졌을 때 특별하게 놀라거나 거부감을 느낀 대중은 없었다. 수십 년 넘게 권력과 차별에 저항하고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준 그의 공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의미 있는 노래 가사 역시 현시대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저자가 밥 딜런의 이 노래 가사를 굳이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접하게 되는 전 세계 소식들 중에는 여전히 이 노래 가사를 적용할 수 있는 뉴스들이 많기 때문이다. 권력을 소유한 소수의 집단이 자행하는 차별과 억압 그리고 그런 사회 부조리를 외면하고 철저하게 기득권을 위한 문장에만 집중하는 일부 언론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치를 저버린 일부를 보면 여전히 우리에게 이 노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많이 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과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책임이자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저자는 국내외 여러 시인들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그 작품을 통해 느낀 여러 생각과 감정들을 독자들에게 전해주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인 <공무도하가>를 통해 시간을 초월한 위로를 받았고,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접했던 이영광 시인의 <사랑의 발명>을 통해서는 사람 곁에 사람이 함께 서 있어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깨닫게 되었다. 오든의 시 <장례식 블루스>에서는 한 개인의 죽음이 얼마나 큰 고통이고 단절인가를 느낄 수 있었고, 음유시인 밥 딜런의 노래 <시대는 변하고 있다>에서는 변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연대가 필요한가를 배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필립 라킨의 시 <나날들>에서는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덮고 나서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시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인생을 배운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것이었다. 시 한 편이 주는 울림이 세상과 타인 그리고 우리의 존재를 들여다보는 시야를 넓혀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니까 여전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시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아름답고 절절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시들을 여전히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떤 시들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기도 하고, 또 다른 시들은 지금 현재 우리가 가진 고민과 문제들을 반영하고 있다. 시인은 인생을 쓰고, 그 인생의 역사가 담긴 수많은 시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 이런 시들을 외면하지 않고 한 편씩 읽어 내려간다면 우리의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가 담긴 소중한 시 한 편을 읽어보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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