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진짜 휴식이지

오래간만의 기록적인 폭염에 내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여름이 다 지나가기도 전에 녹초가 되어버린 나는 오래전에 잡아놓았던 가족 여행 일정마저 잊어버리는 수준이었고, 가족들에게 몇 번이나 확답을 듣고 나서야 곧 여행을 갈 거라는 사실을 머릿속에 각인할 수 있었다. '대프리카'라는 별명답게 더위는 식을 줄을 몰랐고, 운이 좋게도 우리 가족은 대구가 가장 뜨거웠던 날을 피해 갈 수 있게 됐다.

여름이라고 하면 역시 바다라, 이번 여름휴가는 영덕으로 향했다. 언니가 독립한 뒤에는 거의 부모님 두 분이 가시거나, 가끔 나도 합류해서 세 명이 다였으므로 참으로 오랜만의 완전체 여행이었다. 대구가 너무 더운 건지, 영덕이 너무 시원했던 건지... 여름의 날씨인지라 땀이 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더워서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휴식, 그리고 물놀이. 단 두 가지였으므로 딱히 관광지를 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가만히 있기 좋아하는 내 성격에 딱 맞았다고 생각한다.

@장윤하
@장윤하

숙소로 가는 길에 해수욕장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 봤다. 숙소에 수영장이 있기도 하고,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면 바다를 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바다는 다음 날 가기로 했다. 되게 오랜만에 바다 냄새를 맡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갈 예정이라 다들 잠깐 발만 담갔다 오자고 했는데, 더운 날씨와 달리 물이 엄청나게 차가웠다. 이런 상쾌함을 느낀 지가 대체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장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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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행복을 맛본 뒤 점심을 먹으러 미리 봐 둔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은 두부 버섯전골이었는데, 난 버섯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그다지 기대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는데도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양이 엄청나게 많았던 데다가 국물이 너무 맛있어서 억지로라도 더 먹고 싶었던 맛이었다.

점심을 다 먹고 나니 두 시 반쯤 되었고, 이제 슬슬 숙소 체크인을 하러 갈 시간이 됐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재빨리 수영장으로 향했다. 나는 원래도 바다보다는 수영장을 좋아하는 편이고, 수영장을 가 본 지가 더 오래되었기 때문에 내 기대보다도 더 신나게 놀았다.

@장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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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생각했던 것보다 물이 조금 따뜻해서 당황했지만, 생각해 보니 차가운 것보다는 따뜻한 게 놀기에도 더 좋을 것 같았다. 수영장 자체는 야외에 있었기에 바깥 경치가 다 보이는 상태에서 놀 수 있었는데, 풍경이 너무 예뻐서 노는 내내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올라가자고 할 때까지 나만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단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물에만 있었다.

숙소로 다시 돌아와서 개운하게 씻고, 밖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가족들과 숙소에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사실 어릴 때는 너무 어려서 부모님과 다양한 대화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당시에는 사춘기를 지나던 시기라 툭하면 분위기가 험악해지고는 했기 때문에 이런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언니와 내가 성인이 되고, 따로 나가 살게 되면서 이런 시간이 점점 소중해지고 있다. 특히나 딸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이 우리 부모님의 여전한 로망이기에, 즐거운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침대에 눕고 나니, 수영장에서 너무 열심히 놀아서 그런지 온몸이 욱신거렸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혹시 모르니 바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생각한 탓에 더 아쉬움이 커서 열심히 놀기는 했지만, 근육통이 꽤 오래가서 조금 적당히 놀아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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