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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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도시 한복판을 걸어가다가 12시에 거의 다다른 커다란 시계를 두고 환경 캠페인을 버리는 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다. 지구 종말의 시계라는 무서운 별칭을 가지고 있는 그것을 홍보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대중들에게 지구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깨닫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런 환경 관련 캠페인뿐만이 아니라 국내외 언론사의 칼럼,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TV 속 강연 등을 보면 최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엄청난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이 세상이 정확하게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확하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통계분석의 대가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사 학자 바츨라프 스밀이 펴낸 이 책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는 매우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기반의 명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중들에게 설명하는 것을 선호하는 저자가 지금 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고스란히 이 책 한 권에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지금 우리 주변을 조금 더 분명하게 바라보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우리가 살면서 접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 중에는 그 발생 원인이 단 하나라서 설명하기도 쉽고 해결하기도 편한 것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어떤 문제들 같은 경우에는 한두 가지 요인이 아닌 마치 거미줄처럼 다양한 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나타나는 것들도 있다. 저자뿐만이 아니라 최근 각국 정부와 세계 시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문제 역시 후자에 속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단 하나의 구멍만을 계속 파고드는 착암기가 아닌 지평선을 드넓게 훑는 스캐너 유형에 속하는 저자의 통찰력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 위기나 기후 위기와 같은 방대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류사는 물론이고 사회, 경제, 정치적 요소 역시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책에서 지적한다. 수많은 부품들로 구성된 기계가 고장이 나서 고치려 하는 상황에서 특정 부품 몇 개를 빼먹는다면 제대로 복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바탕으로 저자는 연결성을 가지고 있는 에너지, 시량 생산, 물질세계, 세계화 등 일곱 가지 핵심 주제를 선별하였다.

 첫 번째 주제로 선정한 에너지 관련 내용 중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요즘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평균 에너지의 양이 19세기 초 조상들이 사용하던 그것보다 무려 700배나 많다는 것이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과정은 물론이고 그것을 사용자들이 받는 방식과 관련된 기술들이 발전한 결과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류의 삶이 더 윤택해지고 문명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에너지의 공급과 소비 모두가 필수적으로 증가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은 현대 문명 발전에서도 결코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핵심 사항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지적은 최근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탄소 중립 문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걱정은 단순히 일부 환경학자들이 아닌 전 세계 정부들로 확장되었고,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큰 힘을 받게 되었다. 이미 일부 선진국들이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높이고 있고, 글로벌 대기업들이 탄소 중립 경영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또는 늦어도 30년 이내에 탈탄 소화를 끝내고 재생에너지로 완전하게 전환할 수 있다는 일부 주장에 저자는 신중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에 대한 첫 번째 근거로 현재 화석 탄소의 연간 세계 수요가 100억 톤을 약간 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인구에게 공급되는 주요 곡물의 총 수확량이나 물의 양보다 훨씬 많은 수치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화석 탄소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저자의 주장은 현재 인류가 화석 연료에 의존하고 있는 그 규모에 비해 전환해야 한다고 목표로 삼은 시기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이런 저자의 근거 있는 우려는 그다음 주제인 식량 생산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탄소 중립의 현실화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사실 우리 먹거리가 어떤 식으로 식탁까지 오는가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 소비자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저 포장지에 적혀 있는 최소한의 기본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믿고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의 식생활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가에 대한 문제를 간과하기 쉽다. 미국의 경우에는 식량 생산에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에너지가 국내 총 공급의 1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만 보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식량 가공과 판매, 포장과 운송, 도매와 소매 서비스 과정에서 사용되는 에너지까지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 일반 가정에서의 식품 저장과 조리 준비,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간편하게 제공하는 음식에 들어가는 에너지까지 합하면 20퍼센트까지 그 비중이 커진다고 한다. 결국 드넓은 논과 밭에서 작물을 수확하기 위한 농기계를 움직이는 순간부터 집에서 음식을 해먹기 위해 가스레인지의 손잡이를 돌리는 그 순간까지 엄청난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우리 인류는 반세기 동안 너무나도 편하고 익숙해져서 이제는 자리를 확고하게 잡은 이런 체계 자체를 포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그 질문에 대한 확신에 찬 답을 돌려줄 수 없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더 냉정하고 냉철하게 바라봐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수치화된 자료와 과학적 근거들을 바탕으로 이 책을 펴낸 궁극적인 목표라고 생각한다.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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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해서 등장하는 주제들 역시 앞서 소개한 에너지와 식량 문제들이 가진 현실적인 부분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암모니아, 강철, 콘크리트, 플라스틱에 대한 인류 문명의 의존을 다룬 세 번째 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이 네 가지 물질들 앞에 현대 문명의 네 가지 기둥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이 네 가지는 물리적, 화학적 속성은 제각각이지만 현대사회에서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네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뽑는다면 암모니아라고 저자는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중, 고등학교 시절 이 무기화합물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부를 하였지만 사회에 나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 존재마저 잊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 유무와 상관없이 질소 비료의 주요 원료가 되는 것이 바로 합성 암모니아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이 기체를 활용하는 법을 깨닫지 못했다면 40억 명 가까이 되는 인류가 2020년을 넘겨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썩지 않아서 지구 환경 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플라스틱은 여전히 현대인들의 삶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합성 유기물이다. 해변으로 몰려온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를 바라보면서도 쉽게 일상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동차와 가전제품부터 프라이팬과 포크까지 안 쓰이는 곳이 없는 강철은 현대 문명의 외관을 결정하고 가장 기본적인 기능까지 해결하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콘크리트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도시에서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네 가지 물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가를 천천히 살펴보니까 저자가 현대 문명의 네 가지 기둥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가 명확하게 이해되었다. 하지만 이보다 저자가 이 네 가지 물질들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이것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공통점에 있었다. 그 공통점은 바로 이 네 물질을 대량 생산하는 과정 자체가 화석연료의 연소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이 네 가지 물질이 하는 역할을 하면서 화석 연료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대체재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지금 상황을 빠르게 바꾸기는 어렵다는 의미이다.

 저자가 전달하는 책 내용들을 두루 살펴보면 기후변화를 다루는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관련 기구들 그리고 환경 단체들의 시도와 노력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시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인류에게 당면한 여러 가지 시급한 문제들 중에서도 기후변화가 매우 중요해 보인다는 점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너무나도 중요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부분들이 명확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감성을 자극하는 목적으로 등장한 근거 부족의 주장이나 허황된 설명 보다 정확한 수치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근거 자료를 제시하며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고 싶은 저자의 바람과 희망이 이 책에서 가득 느껴졌다. 무엇보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 그리고 개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이 화석 연료에 매우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지금 당장 100만 월세로 내기 어려운 가정에서 다음 해 10억 짜리 집을 사려고 계획을 짜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문제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대비하고 대응하는 것은 시간과 노력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현실을 인정하고 난 다음에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려운 부분들은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는 탄소 중립 정책의 목표 시기를 현실적으로 조정하고 난 다음에 눈여겨봐야 할 문제는 바로 전 세계 국가들의 입장 차이일 것이다. 이미 반세기 넘게 석탄과 석유 연료로 부유한 환경을 일구어낸 미국과 서유럽은 현재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내고 있는 쪽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와 다르게 여전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고 오히려 앞으로 더 화석 연료에 의존해야 할지도 모르는 저소득 국가들이나 중진국 입장에서는 이런 동참의 목소리가 강요이자 압박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부유한 선진국 내에서도 부모님 세대와 다르게 친환경적이고 절약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듣는 젊은 세대의 선택 역시 불분명하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구성원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해결하는 과정은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기후변화라는 난제는 미국이나 중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이 힘을 합쳐야 그나마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이 보이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자신이 비관론자도 낙관론자도 아닌 과학자라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라는 문장 역시 덧붙이고 있다. 최근 주변을 둘러보면 이 기후변화를 둘러싼 여러 가지 주장과 의견들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한 주장과 의견들 중에서는 일부 유의미한 내용들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상당히 과격하고 극단적인 것들도 많다고 느껴졌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책에서 저자가 설명하는 과학적 통계와 객관적 자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성과 논리가 바탕이 된 이런 내용들은 혼란스러운 우리들이 마주하고 있는 이 세상을 더욱 냉철하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우리가 취해야 하는 다음 단계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면서 보다 효율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여기에서 경계심이란 기후변화에 무관심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집단을 과학적으로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이다. 보다 효율적인 해결책의 핵심은 탄소 중립 정책의 목표 시기가 과연 현실적인가를 재차 논의하고 바로잡는 것이다. 냉정해 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신뢰가 가는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외면하고 지금처럼 살아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들의 몫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으로 인해 마주하게 될 세상으로부터 무언가를 받게 된다면 그것 또한 우리의 책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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