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와 윤리적 모순

ⓒ1차: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2차: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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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극 중 사람들이 최고의 명대사로 꼽는 대사 중 하나다. 핵무기는 세계 2차 대전을 끝내며 평화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오펜하이머의 대사처럼 일본에겐 큰 상처로 남게 되었다. 또한 그 상처가 두려워 세계는 협약을 맺고 핵무기에 대해 서로가 서로를 통제하고 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핵무기를 개발한 오펜하이머 박사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그의 대학시절 이야기부터 명성에 걸맞지 않은 비참한 말년까지, 사실적이고 몰입감 있게 잘 담아냈다. 대학생 오펜하이머는 주변으로부터 소위 말하는 덜떨어진 학생 취급을 받았다. 수업에 찰 따라오지 못하고 어딘가 불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사랑하는 물리학을 물리학의 불모지인 당시의 미국에 들여왔고 버클리 대학에서 교육자로서의 능력까지 검증받아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반열에 올랐다. 공산당을 지지하는 정치적 문제가 있긴 했지만 결국 그는 미국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대단한 업적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그는 말년에 미국 에너지국의 위원장이었던 스트로스와의 불화로 인해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작품성이 대단하다고 느낀 것도 있지만 내용이 상당히 어려워서 대단하다고 느낀 것도 있다. 사실 크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또한 어느 정도 관련 지식이 없으면 전혀 무슨 말인지, 저게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채, 자막만 열심히 읽다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진짜 우리가 생각해 볼 만한 장면은 대통령과 오펜하이머가 면담을 하는 장면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폭탄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큰 윤리적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제 손에 피가 묻어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대사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버튼을 누르는 것은 자신이고 누가 폭탄을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는다고 받아친다.

ⓒ1차: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2차:한겨례21
ⓒ1차: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2차:한겨례21

 


 개발한 사람과 사용한 사람. 둘 중 누가 더 잘못인가를 따져 봤을 때는 아마 사용한 사람이 더 잘못했다고 고를 것이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상대국보다 먼저 개발해야 한다는 애국심과 본인이 만든 폭탄으로 인해 수만에서 수십만의 사람이 죽는다는 윤리적인 문제 사이에서 고민을 한 것이다. 결국 그는 애국심을 택하며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위치 선정에도 참여하였고 시민들로 하여금 전쟁 영웅 대접을 받게 되었다.

 만약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내 손으로 세계사가 달라질 수 있고 전쟁의 승패를 판가름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각자의 위치에서 장기말처럼 움직이는 일개 군인들이나 전쟁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무고한 시민들까지 몰살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나오는 아이히만도 그저 상부의 명령과 애국심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그것에 비춰봤을 때 오펜하이머도 어쩌면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국민들에겐 전쟁 영웅이지만 일본 사람들에겐 희대의 전쟁 범죄자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만약에 나였으면 나도 개발을 했을 것 같다. 전쟁은 내가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는 상황이다. 우리가 먼저 개발을 하지 않으면 역으로 우리가 핵을 맞을 위기인데 어떻게 거부를 할 수 있을까? 결국은 내가 개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죽었다는 또 다른 죄책감에 빠질 수 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이런 모순들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고 고민 해보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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