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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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에 고민 상담을 주제로 한 여러 방송 프로그램들을 보다 보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연이 바로 공감 능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족이나 연인이 공감을 잘해주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최근 우리 사회에서 공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방송에서뿐만이 아니라 정치인, 채용 담당자, 학자들 역시 공감의 가치를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분위기이다. 이렇게 공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배경에는 이것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갈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를 잡고 있다. 타인이 처한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나아가 친절과 배려를 실천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바로 공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을 쓴 예일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폴 블룸은 이 사회적 믿음에 대해 당당하게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그동안 공감에 대해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가졌던 사람들이 다시 한번 이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가장 먼저 저자는 이 책의 주제이자 핵심 어인 공감에 대한 개념 정리를 우선적으로 하고 있다. 사전적 정의를 떠나서 우리 사회에서 이 공감을 해석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저자는 우리가 타인이 느끼고 있다고 여기는 것을 느끼는 행위로 정의 내리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공감을 친절이나 연민의 동의어처럼 사용하는 개념의 확장을 차단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공감을 한다고 해서 친절하거나 착한 사람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공감 능력이 사회 구성원으로 갖추어야 할 필수 자질들 중 하나로 여겨지는 공감의 시대에 저자의 이런 주장은 굉장한 파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자 역시 그런 사실을 결코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논란을 마주하려는 자세를 책 초반부터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공감을 지지하고 신뢰하던 많은 사람들과 다르게 저자는 이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정말 만들고 싶다면 오히려 공감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 내내 저자가 끊임없이 공감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의심하고 이 개념에 심취한 사회와 집단을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감이 특정한 한곳만을 환하게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와도 같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연극을 본 사람이라면 무대 위 독백을 하는 극중 인물만을 비추는 조명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효과로 인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 인물에게만 집중을 하게 된다. 이런 스포트라이트처럼 공감은 비슷한 또는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오로지 한 곳에만 시선을 가둔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동안 공감을 생각하면서 단 한 번도 저자의 이런 지적을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공감이 가진 선한 영향력을 너무 과대하게 평가한 나머지 다른 곳을 미처 바라볼 여유를 갖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비슷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바라보지 못하는 차원을 넘어 효율적인 정책이나 구호 활동을 방해하는 결과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 책 서문에서 언급된 2012년 코네티컷 주 초등학교 총기난사사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고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사건 보도가 시작되자 전역에서 선물과 장난감들이 배송되어 지역 사회를 난감하게 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역이 비교적 부유한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기부금이 곳곳에서 흘러들어왔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가 스무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이 총기난사사건의 비극성을 폄하하거나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사건이 일어났던 2012년에 미국의 또 다른 도시인 시카고에서는 더 많은 학생들이 살해당했다는 점과 그 사실이 상대적으로 미국 사회에 알려지지 않고 공감적 염려를 받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공감은 우리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구성원들끼리의 유대를 강화시킨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 인간들이 보여주는 공감적 염려가 긍정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저자의 지적은 자연스럽게 공감이 가진 두 번째 문제이자 한계로 이어진다. 그것은 바로 공감으로 인해 내린 판단과 선택이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도덕적 행위와 동떨어진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점을 이 책에서 지적한다. 그 근거로 제시된 것이 바로 뱃슨이 피험자들에게 불치병에 걸린 한 소녀의 인터뷰를 들려주며 수행한 연구이다. 한 집단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소녀의 인터뷰를 보라고 요청을 받았고, 또 다른 집단은 소녀의 입장에서 시청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 결과, 공감을 유도하는 말을 들은 피험자의 과반수가 소녀의 의료 서비스 순서를 앞당기고 싶어 했고, 공감을 억제하는 말을 들은 집단의 경우에는 3분의 1만 소녀의 순서를 앞당기고 싶어 했다고 한다. 이 연구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실제로 인터뷰 속 소녀의 순서를 바꾸면 그 소녀보다 앞에 있던 아이들의 치료 시기가 뒤로 밀린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공감의 자세를 요청받은 이들은 비도덕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다. 공감이라는 감정에서 시작된 행위이지만 순서를 앞당기고 싶어 한 피험자들은 결과적으로 인터뷰를 하지 않은 수많은 아이들에게 피해를 준 셈이다.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 또는 지역 사회가 가진 사연이 특별하게 눈길을 사로잡고 관심을 끌었다고 해서 타인이나 다른 집단에게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행위를 허용해 주진 않는다.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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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 저자가 언급하는 공감이 가진 또 다른 맹점은 우리 인간들이 가진 수많은 편견들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 인간은 조금 더 친숙하고 관심이 가진 이들에게 더 쉽게 공감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미국인은 자신들과 미국인들의 사연에 더 쉽게 빠져들고, 한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처한 상황에 더 쉽게 감정을 이입할 것이다. 이름도 모르고 사는 곳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비극을 들었을 때보다 함께 사는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의 곤경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경우가 훨씬 많다. 저자는 우리 자신과 조금 더 비슷한 사람들이나 다른 이들보다 더 매력 있어 보이거나 더 취약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공감하기가 훨씬 쉽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공감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런 인간의 본능 그 자체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이 우리와 같은 국적이나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또는 유명한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공감을 받는 것 자체가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공감이 가진 한계가 바로 선한 행동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의 고통을 봤거나 들었더라도 무언가 의미 있는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웹서핑을 하다가 자주 접하게 되는 자선단체의 홍보 영상을 보고 기부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외면하는 선택을 한다. 타인의 비극을 접하고 간접적인 고통을 겪었을 때, 그 상황을 개선하기보다는 그 공감이 주는 고통 자체를 없애는 편이 쉽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포트라이트처럼 좁은 면적에만 빛을 비추는 한계 이외에도 공감이 가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상당히 많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공감을 지나치게 신뢰하고 강조하는 오늘날 사회 분위기를 경계하는 것이다. 그저 경계하는 차원을 넘어 저자가 진정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공감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나 개인의 문제를 더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기반이 되어주는 이성이다. 인간 사회에서 이성의 가치와 중요성은 저자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강조하고 또 강조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성을 또 한 번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이것이 가진 가치를 조금씩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저자가 강조하는 이성을 바탕으로 세상과 타인을 바라본다면 앞에서 등장했던 공감의 문제점과 한계들을 자연스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친 곳 외에도 우리가 관심을 두고 도와야 하는 곳들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인지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인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이성의 가치는 빛을 발할 것이다. 그 사람 또는 그 지역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는 것들을 구분하게 만들어주고 도움의 우선순위를 쉽게 정할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더 공감이 간다는 이유로 자행되었던 비도덕적인 행위나 공격을 멈출 수 있게도 해줄 것이다. 특히, 많은 전문가들이 모여 상당한 노력이 돈이 들어간 정책을 만들고 수행하는 국가 정부나 지역 단체라면 더더욱 공감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이성을 우선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 책의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절대적인 선으로 칭송받고 있는 공감의 가치와 효력을 구체적으로 검증하고 분석하는 단계를 밟았다. 그 과정에서 공감에 대한 기존의 생각과 다르게 몇 가지 중대한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점은 공감을 칭송하고 강조하면 할수록 우리 사회가 더 곤란해진다는 것이었다. 공감이라는 감정에 심취해서 친숙한 타인이나 집단을 지나치게 옹호한 나머지 덜 친숙한 타인이나 집단은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고통을 해결해 주는 원동력으로 여겨졌던 공감이 현실에서는 별로 효력이 없거나 있더라도 소수에게만 국한되고 있다는 한계를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저자가 공감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거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제거되어야 하는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공감의 가치와 효력을 과대하게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고 더 나은 해결책인 이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비슷한 상처를 가진 이들과 더 쉽게 친구가 되고, 코미디 영화를 보고 박장대소를 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이런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는 공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욱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 그동안 공감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에만 몰두한 나머지 부정적인 측면을 외면했다는 반성을 하였다. 이런 공감이 가진 명확한 한계점을 인지하고 그 한계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이성을 주목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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