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자아를 통해 거울을 보다.

“헌터 애덤스” 그의 이야기는 정신병원에서부터 시작된다. 환자들 속에서 “헌터 애덤스”는 자신만의 재치 있는 표현방식으로  그들과 소통하게 되며, 아픈 사람들은 그를 통해 행복이 주는 아름다움을 알아가게 된다. 불행한 삶 속에서 가만히 자신을 내쳤던 애덤스는 정신 병동에 있을 때 환자들이 자신에게 붙여준 “패치”라는 이름을 통해 새로운 패치라는 자아를 찾게 되며 환자들을 단순히 문제를 가진 불완전한 인격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그들을 온전한 인격으로 대하면서 육체적인 질병의 치료보다는 더 중요한 것을 얻도록 하는 의사가 된다.

                                                                                    출처:네이버 영화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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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개봉한 “패치 애덤스”는 실제로 미국 의사이자 코미디언인 “패치 애덤스”의 생애를 담은 영화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한 사람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 걸 넘어서 “소통”에 아름다움까지도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어떻게 행복을 주는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나는 애덤스만의 소통 방법을 통해 그가 꿈을 이룬 의사가 되는 과정을 상호주의 이론과 함께 파헤쳐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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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애덤스는 “행복”의 상징성을 다른 사람을 통해 배운 의사이다. 그가 정신 병동에 있었을 때 그는 환자들을 웃기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행복”으로 다가왔다. 그가 환자들에게 재치 있는 행동을 하면 환자들은 언제나 웃는 표정으로, 아프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그들만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자신이 타인을 웃기게 한다면 “나로 인해서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구나”를 배웠고 자신만의 행복의 상징성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해 온 것이다. 즉 애덤스는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상징을 얻었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면서 지금의 자기 모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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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라는 단어의 의미는 애덤스를 “치유의 의사”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흔히 사물이나 사람에 이름을 짓고 계속해서 그 사물의 이름을 부른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이것이 부정적인 의미인지, 긍정적인 의미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정신병원에서 환자가 지어준 애덤스의 새 이름 “패치”는 상처를 치유하다는 뜻을 지니며, 그는 그러한 패치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이름과 같은 삶을 살기로 다짐한 것이다. 이름을 통해 그의 삶의 방향을 정하고 행동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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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환자들을 단순히 치료받아야만 하는 사람들로 단정 짓지 않았다. 그들 또한 행복한 삶의 자유롭게 누릴 권리가 있으며,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애덤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것들에 할당한 의미를 토대로 행동한다. 예를 들어 환자들을 단순히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환자는 미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실제라고 정의하고 나면 그것의 결론 또한 실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덤스가 바라보는 실제는 환자 하나하나가 완전한 인격체이며 행복한 인생을 살아 마땅한 존재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는 결국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고 아껴줘야 하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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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마쳐 갈 무렵,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순간으로 다가왔던 패치의 대사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삶의 기적에 너희가 무감각하게 하지 마. 항상 인간 육체의 놀라운 작동에 감탄하며 살아, 좋은 성적보다 그게 네 초점이 되게 해, 성적은 절대 네가 어떤 의사가 될지 못 가르쳐” 그는 그렇게 소통을 통해 자신의 병든 모습이 삶의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모습을 통해 바뀌었고, 자신 또한 병든 사람들의 거울이 되고자 하였다. 그러한 그의 삶의 태도는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나는 어떤 자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까 생각해 보게 한다. 영화 초반부부터 후반부까지 내용 속에서 애덤스라는 사람을 완벽하게만은 표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러한 연출을 통해 결국 주인공마저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가 “패치 애덤스”를 통해 바라보아야 하는 것 또한 나는 지금 어떤 소통의 과정에서 살아가고 있는가이다. 한 번쯤 자신에게 막막하고 화가 날 때, 주위를 둘러보면서 나라는 개념을 채워 나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것이다. 언어의 따듯함이 얼마나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지 이 영화를 통해 느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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