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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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원제목은 ‘Accidental Superpower’, 즉 ‘우연한 슈퍼파워’이다. 결국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것은 어떤 면에서는 우연이라는 것이다. 마치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에서 지적한 것처럼 북반구의 중위권 국가, 특히 유럽에서 문명이 번성한 것은 지리적 영향을 바탕으로 한 우연의 결과라는 설명과 유사하다. 이 책에서 피터 자이한은 국가의 부와 권력을 결정하는 세 가지 요소를 말한다. 운송의 균형, 원양 항해, 산업화가 그것이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운송의 균형’이라고 말한다. 운송의 균형을 이룬 국가는 내부 시장이 발달하고 국가가 통합되며 자본 창출이 용이해진다는 것인데, 미국의 운항 수로는 17,600만 마일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나머지 세계의 수로 길이를 합한 것보다 더 길다. 이렇게 미국은 지리적 특수성과 다양한 인종의 어울림, 그리고 하나의 통합된 거대 국가라는 장점이 어우러지면서 과거나 지금이나 세계 경제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로 펼쳐온 대외 정책을 크게 바꾸려 하고 있다. 그만큼 미국의 의존도가 컸던 나머지 국가들 입장에서는 앞으로 발생될 큰 혼란에 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사실 이미 그 혼란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종식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래서 미국의 브레튼우즈로 연합국 대표들을 불러들여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를 만든다. 미국의 달러를 기축 통화로 사용하는 대신 미국의 해군력을 바탕으로 대양 항해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신의 진영 내의 모든 국가들이 자국 시장에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덕분에 역사적으로 분쟁이 많았던 지정학적 특성들이 거의 사라지고 많은 국가들이 전쟁 준비보다는 경제 발전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독일과 일본을 비롯하여 우리나라도 경제 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1970년대 들어서 브레튼우즈 체제에 편입된 중국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30년 전에 냉전이 끝나고, 미국은 2017년 기준으로 한 해에 5700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해 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미국이 세계의 보안관이자 빅 브라더의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게 되면 자연스럽게 각국은 스스로 자국의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 게다가 해상 무역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수출 주도형으로 살아가는 많은 국가들의 경제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히나 2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 군비 증강에 있어 제재를 당하고 있던 독일과 일본이 변화할 여지도 있고, 러시아도 다시금 유럽을 넘볼 수 있게 된다. 또한 미국이 중동 문제에서 서서히 발을 빼면 이란과 사우디, 이스라엘과의 분쟁이 촉발될 수 있고, 터키 또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그만큼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는 세계의 혼란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다.

  그렇다면 미국이 브레튼우즈 체제를 더 이상 유지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오랜 시간 지속된 자신들의 무역 적자 때문일까. 그동안 미국이 세계에서 보안관 역할을 자처한 것은 무역 적자를 감수하고서도 얻는 이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또한 중동 산유국들에게서 석유와 같은 에너지원을 수입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대양 항해의 안전이 필요했고, 자신들의 달러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기 위해서라도 경제의 자유로운 소통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미국은 자신들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다른 국가들을 위해 헌신할 필요성이 없어졌다.

    그 이면에는 바로 셰일 혁명과 인구 구조의 변화가 있다. 셰일 가스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그것을 채굴해 내는 기술이 없었다. 하지만 셰일 가스 채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저렴한 비용으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원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그 덕분에 미국은 더 이상 중동 산유국들을 비롯한 러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일부 국가들의 석유 생산의 안정에 개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함께 다른 국가들은 인구구조가 역전되고 있지만 미국은 역동적인 인구 구조와 고 숙련 근로자의 이민을 통해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 달러의 기축 통화 위치가 무너질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세계 경제가 흔들리면 각국의 통화 가치도 같이 혼란스러워지게 되고, 그 덕분에 미국 달러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의 자신감 덕분에 미국은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 외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의 방위비를 전적으로 그 나라가 부담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주장을 무시하면 그만큼의 무역 제재를 감수해야 하기에 각국은 함부로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려는 행동을 할 수 없다. 

  한때 중국이 미국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었다. 그런데 최근의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양상을 보면 중국이 미국에 끌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은 현재 GDP의 15%를 대미 수출에 의존하고 있고, 나머지 수출의 비율에 있어서도 미국의 영향력 하에 있는 국가들과 엮여 있다. 그래서 이를 벗어나기 위해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꾸준히 수행해 왔지만 최근 들어 여기저기서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중국은 각종 원자재뿐만 아니라 석유와 같은 근본적 에너지원에 대해서도 미국처럼 자급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만큼 중국은 아무리 자국 인구가 많고 내수 시장이 크다고 해도 해외 무역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중국은 인건비 상승과 함께 정치적 불안정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미국을 따라잡기 위한 경제력 상승과 군비 확장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도 없게 됐다. 게다가 중국이 가장 크게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지금의 중국의 경제 성장은 미국의 브레튼우즈 체제가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제 그마저도 붕괴될 위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잠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줄에 설까 고민하던 국가들은 이제 어느 줄에 서야 할지 명확해지고 있다.
   세계 질서의 재조정이 미국에 무조건 이득만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저자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는 확실한 비교 우위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그 자체로 에너지원의 자급력을 가지고 있고, 거대한 내수 시장과 운송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언제든 대부분의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즉,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무역에 있어서도 미국은 적자폭이 큰 수입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수출에 있어서도 그 피해가 미미하다. 왜냐하면 미국의 수출은 GDP에서 8.5%의 비중만을 차지하고 있고, 그마저도 3분의 1은 북미자유무역협정 국가들과의 교역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셰일 혁명 이후로 에너지 수급이 원활해지고 그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해외로 빠져나갔던 제조업 회사들이 다시금 미국으로 귀환하고 있다. 결국 세계적으로 무질서가 팽배해지면 오히려 미국의 영향력은 더 커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 또한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강하게 자신들의 요구를 각국에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런 세계 흐름의 혼란 양상 속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우리나라도 한때 중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을 보면서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중국을 좀 더 염두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실제로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 비중은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의하면 2017년 기준으로 중국이 25%, 미국이 12%이다. 그런데 중국의 대미 무역 의존도를 따져보면 미국 비중이 전체의 75%를 차지한다. 결국 우리나라가 중국을 통해서 이득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나라를 통해 수입된 중간재가 중국에서 완제품으로 만들어져서 미국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단편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비중이 중국 보다 낮은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대미 수출 비중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가 사드 배치 이후 중국에 무역 제재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중국 의존도가 높을수록 그 변동성도 같이 커질 수 있다.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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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미국의 줄에 서야 하는가도 의문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의 결론은 저자의 자국인 미국이 그만큼 대단하니까 ‘알아서 기어라’라는 느낌으로도 보인다. 또한 트럼프가 사업가 출신이고 협상 상황에서 항시 주도권을 잡고 가는 것을 잘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미국의 상황이 저자의 주장처럼 무조건 긍정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즉, 셰일 가스는 향후 몇 백 년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무궁무진하고, 미국의 국내 정세는 계속 안정적일 것이며, 미국이 세계를 등한시하고 독자 행보를 해도 충분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은 너무 일방적인 초긍정의 주장으로 보인다. 미국을 제외하고라도 다른 국가들끼리 얼마든지 연합하여 평화 무드를 지속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각국도 신재생 에너지 생산 기술의 발전으로 나름의 에너지 자급력을 높여갈 여지도 있다. 따라서 미국의 지금 행태는 마치 포커 게임에서 블러핑 기술을 구사하는 느낌도 든다. 따라서 무조건 미국의 입맛에 맞게 끌려다닐 것도 없다. 우리나라도 적절히 미국이 주도하려는 게임 판에서 살짝 발을 빼고 적절히 우리만의 주도권을 잡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미국이나 중국 등의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적절히 우리만의 살 길을 찾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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