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 설킨 두 나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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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본인이 느끼기에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좋다고 할 순 없다고 여겨졌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런 사이가 되었는지 궁금증이 들었다. 물론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천자국으로서 우리가 사대하는 국가인가. 혹은 그저 근접해 있는 이웃 국가일 뿐인가. 아니면 이제는 어디서 전파되는지 알 수 없는 감염병의 근원지로 여전히 그들을 원망하고 있는가. 
 COVID-19가 처음 발병할 당시만 해도 우리는 ‘우한 폐렴’이라고 그 병명을 지으며 전염병의 성격을 발원지의 특성에 기대어 규정했다. 그 지역 시장이 얼마나 비위생적인지 연신 보도해 가며 그들의 ‘비근대성’을 우리와 구별 짓고 혐오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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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중국에 대한 혐오감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저품질 대량 생산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가성비가 좋은 중국 제품에 대해서는 ‘대륙의 실수’라고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들을 혐오하고 비아냥대면서도 동시에 그 ‘실수’에 열광하며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한다.

 한국 관광 시장의 주요 소비자는 중국인이기 때문에 서울 명동의 상점에서는 중국어를 잘 구사하는 직원들이 무조건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중국 회사의 워크숍을 위해 한강에서 삼계탕 파티를 열어주기도 한다. 우리는 이렇게 중국을 혐오하고 조롱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이 모순된 인식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이 책은 아홉 명의 저자가 들려주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한중 관계를 통해 여기에 절대적 우위 또는 절대적 하위 관계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망은 순식간에 혐오로 바뀌기도 하고, 또 새로운 계기로 연대가 형성되며, 피로 맺은 연대는 서로 물어뜯지 못해 안달 나는 미움으로 변하기도 한다. 유교사상과 제국주의, 냉전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한중 관계를 휩쓸고 갔다. 그 파도 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한국은 어떤 고군분투를 해왔는가. 지금 한국과 중국은 어떤 파도 위에 올라있는가. 그 파도가 순풍이 되어줄지, 쓰나미가 되어줄지는 한국과 중국을 둘러싼 세계적 변화를 주시해야 알 수 있다. 그 변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고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책에서는 한, 당, 요, 송, 원, 명, 청, 중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중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인상 깊었던 내용은 ‘조선, 오랑캐와의 연대를 모색하다’라는 부분이었다. 서양 세력보다는 청을 선택하겠다는 얘기다. 서양 국가들은 19세기에 접어들며 동양 진출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선교사와 상인을 대신하여 군인을 파견하기 시작한다. 선교와 교역이 아닌 약탈과 점령을 자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몇 선박은 표류하여 조선에 정박하기도 한다. 서양 세력이 조선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미치게 된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조선의 주적은 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조선의 땅을 유린하고 진짜 중의 진짜 중국이라고 할 수 있는 명을 대신하여 중국 행세를 하는 청에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적이 등장하자 조선인의 생각은 바뀌기 시작한다. 청이 아무리 오랑캐여도 검은 머리에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유교 경전을 읽을 줄 아는 친숙한 존재였다. 그에 반해 서양인은 생김새부터 노란 머리에 푸른색 눈을 한 도깨비 모습이었으며 부모도 내팽개치는 해괴망측한 종교를 가진 낯선 존재였다. 그런 이들이 점차 동양을 군사적으로 위협해오고 있었다.
 적의 적은 동지라고 했던가. 조선 대 청의 구조는 점차 조선과 청 대 서양의 구도로 바뀌기 시작한다. 청을 오랑캐라고 부르며 망하기만을 기다리던 때와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1840년 아편전쟁이 벌어지자 서양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다. 서양 세력이 정말로 동양을 군사적으로 무너뜨릴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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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자는 다음과 같이 조선의 역사를 평가한다. “사대주의적이면서 폐쇄적이었던 성리학으로 인해 조선은 근대화에 뒤처졌고, 그 결과 제국주의 열강의 먹잇감이 됐다”라고. 얼핏 보면 그럴싸하지만, 사실 이 평가는 실제 역사와는 동떨어진 인식이다. 책의 앞부분 내용에도 등장하지만 조선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호수를 통해 빠르게 서양의 문물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과학을 발전시켰고,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였다. 실제로 조선은 성직자의 파견 없이도 천주교 신자를 탄생시킨 유일한 국가다.
 또한 성리학 역시 그렇게까지 폐쇄적인 학문은 아니었다. 심지어 조선의 지식인은 오랑캐, 즉 이적이라고 생각했던 청에 대한 인식을 수정하기까지 했다. 물론 핵심 이론을 교조적으로 신봉했던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서양의 학문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던 수많은 현실주의자가 존재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시작은 동양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서양의 문화를 강요했던 로마 교황청의 결정이었다. 이 결정으로 인해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져버렸다고 서술하고 있다. 서구 열강은 군사적 역량이 축적되자 곧바로 중국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2차례에 걸쳐 아편 전쟁을 일으켰다. 그 여파는 조선에까지 미치게 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그리고 일본제국주의의 침탈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조선은 제국주의 열강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됐다. 그런데 피해자였던 우리는 왜 스스로 나서서 우리의 잘못을 따지고 있는 것일까? 잘못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저질렀는데 말이다.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일종의 중국 혐오가 퍼져 있다. 근대 이전 중국은 국력과 문화의 힘이 모두 한국보다 우월했다. 한중 관계에서 때때로 충돌이 빚어지고, 이에 따라 중국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이 생길 수는 있다. 그러나 중국을 문화적으로 멸시하는 현대 한국인의 중국 혐오와 같은 감정이 사회 전반에 퍼지기는 어렵다. 오늘날 중국 혐오 감정의 출발점은 근대이다. 모든 것이 급속도로 변하던 시기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역시 거대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개화파의 등장으로 인해 특히 변하게 되는데, 개화파 세력은 신문이라는 대중 매체를 통하여 한국인의 생각을 급하게 변화시켜 나간다. 
 개화파 세력은 몰락하는 중국의 상황을 보며 중국을 모욕하는 글을 쏟아낸다. 첫 번째로 중국의 유교를 버려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는 독립해야 나라가 산다고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개혁하지 못하면 중국처럼 망한다고 주장했다. 이 세 가지 원인이 중첩된 가운데 중국에 대한 혐오 인식은 강하게 나타났다. 개화파의 신문에서는 ‘중국이 세상에서 제일 천하다.’,‘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더럽다.’는 등의 혐오 보도가 이어졌다. 이러한 보도에는 중국과 같이 열강에게 모욕당하고 피해를 입는 나라가 돼선 안 된다는 조바심이 개화파에게 격렬한 중국 혐오 감정을 만들었고, 이것이 개화파가 장악한 신문을 통해 확산된 것이다. 
 우리는 수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 복잡하고 미묘하게 이어진 중국과의 관계를 맺고 있다. 대륙과 반도로 붙어 있다는 지정학적 이유, 현재와 미래에도 관계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과 지금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 그리고 과거에는 어땠었나. 역사를 되짚어보며 앞으로 생길 선택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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