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어떤 내용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책 뒤에 적혀있는 '사랑 후 남겨진 것들에 관한 숭고할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 문장을 보고 대충 사랑 이야기이겠구나 생각했다. 구의 증명. 숫자 9를 의미하는 걸까? 아홉 가지의 증명일까? 생각했지만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예측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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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와 담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다. 담이는 부모 없이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이모 밑에서 자랐다. 담이는 부모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모른 채 자랐다. 구의 가정은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형편에 부모님은 구에게 빚을 떠넘기게 된다. 이런 환경에 그들은 헤어졌다 만났다 반복하게 된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 이모마저 병으로 떠나고 담은 계속해서 구를 기다렸다. 그들은 사채업자를 피해 이곳저곳 옮겨 다니지만 구는 점점 세상 끝으로 내몰리게 되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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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구와 담의 일인칭 시점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처음에는 이야기가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시점과 시간을 교차한 진행 방식 더분에 구가 죽고 나서 구와 담의 내면묘사가 잘 이어진 것 같다. 또 표현 하나하나의 묘사가 잘되어 있어 마치 실제 그 장면을 본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몰입감 또한 올라갔다. 장면이 너무 잘 그려져서 주인공의 입장에 이입하게 되어 나까지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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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가 죽고 나서 담이 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처음 접했을 때 다소 충격적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보통의 사람은 화장하거나 묻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담은 구를 태우거나 묻는 대신 자신의 몸에 담았다. 자신의 친구이자 연인이자 가족인 구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어 한 것이다. 자신의 몸에 담기 위해 구를 뜯어먹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표현이 엽기적이기도 하고 기괴하기도 했다.

두 주인공의 삶이 비극적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구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는 노동과 희생으로 움직이며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잃는 약자들의 모습을 대변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때까지 그들의 곁에는 온전한 어른이 있었다면 그들의 상황이 조금 더 나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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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먹는다는 말 때문인지 구의 증명을 읽으면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누군가의 몸을 먹는다면 먹힌 사람이 먹은 사람의 몸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된다고 믿는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에게 자신의 췌장을 먹어달라고 한다. 네 안에서 살 수 있도록.  두 책의 내용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흐름과 분위기가 정반대였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애틋하고 절절한 청춘물이라면 '구의 증명'은 삶의 의미, 죽음의 의미를 되묻게 된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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