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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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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도피’

요즘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 하나 없는 바다에 가서, 밤바다의 찬 바람까지 맞고 싶다.'라고. 아무 연락도 안 보면서 말이다. 누군가의 무엇이라는 직위를 다 버린 채로, 내 이름 세 글자인 나라는 한 사람으로 하루라도 쉬고 싶다.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쉰다는 단어조차 생각하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가기 전에 말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예쁜 가사 몇 구절 종이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어보다.

문득 과거의 나 때문에 눈물도 흘려보고, 힘들다고 아프다고 찡찡거리기도 해본다.

들어줄 사람 하나 없는 고요한 이곳에서.

제대로 된 정의도 없는 '행복'을 쫓으며,

있을지도 모르는 '결말'을 생각하고,

끝이 없을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는 중이다. 그렇게 버텨가는 중이다.

사실은 항상 맨 앞에 서있고 싶은 욕심이 크다. 열심히 살다 보니 쉬는 게 불안해서 악착같이 살아간다. 남들이 기대하는 바는 점점 커져간다. 잘하고 싶은 욕심에, ‘잘했다.’, ‘잘하네?’라는 말이 듣고 싶었을 뿐이다. 처음엔 동기부여도 되고, 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성취감도 오르겠지만, 문제는 생각보다 그런 말들이 오래가진 않는다.

이젠 돌아오는 말은 ‘어차피 넌 잘하겠지.’, ‘잘할 거잖아?’라는 말에,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흠조차 보여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가는 중이다.

굽지도 않은 도자기 그릇이 있다. 물론 완성되지도 않았다. 아직 그릇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릇에 소량의 물 정도는 아름답게 다듬을 수 있는 수준이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더 좋고 예쁜 그릇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물이라면?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양은 분명히 존재한다. 천천히 늘려가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많은 것들이 주어진다는 게 문제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니라 남의 기준을 맞추며 촉박하게 살아가니까.

 

그렇게 지쳐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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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일들을 모두 맡으려 애쓴다. 세상에서 예시가 존재할 수 없는 ‘완벽’이라는 단어를 모티프 삼으며 말이다. 어쩌면 이젠 쉴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몸도 마음도 상하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물리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도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어떻게 버티자고 그렇게 살아왔을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좀 쉬어도 된다는 뜻이다. 나 자신은 속일 필요가 없다.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

울면서 답답해보기도 해보고. 쉬고 싶으면 쉬라는 뜻이다. 아무도 당신이 뒤처진다는 것에 대한 의식이 없다.

애초에 뒤처진다의 기준도 없다. 당신 스스로 뒤쳐간다 느끼는 것뿐이다.  남들도 그렇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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