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을 말한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며 자라고,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 드라마 등 여러 많은 미디어를 보고 만들면서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정말 역사는 무엇인가. 우선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역사학은 인간의 과거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역사학을 학습함으로써 한국인으로서의 과거, 현재, 미래의 연속성과 정체성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보편성과 우리만의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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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역사를 이해하는 두 사람의 입장은 달랐다. 우선 랑케는 역사를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라고 칭했다. 랑케는 역사를 지극히 객관적이고 무미건조하게 설명했다. 랑케는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를 강조했으며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를 위해 글을 썼다. 랑케는 신학을 사랑했다. 국민주권의 공화제는 기존 왕정의 보수 체제를 파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존 체제와 기독교의 체제를 지키는 힘이 필요했다. 그것이 군주제가 존속할 수 있는 현실의 근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이에 따라서 랑케는 신학으로 인해 변화하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는 평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가는 과거의 모든 사실을 수집할 수 없다. 역사가와 사람은 그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과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역사가가 처한 시대와 현실도 모두 역사의 산불이다. 이게 랑케가 주장하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의 한계점이다.

랑케가 역사를 이렇게 주장하는 반면, E.H.카 (에드워드 카)가 주장하는 것은 이렇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사실을 갖지 못하는 역사가는 무의미한 존재다. 또한 역사가가 없는 사실 또한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서 과거는 과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재에 있어서 의미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에드워드 카는 역사 집필 과정에서 역사가에 의해 걸러졌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객관적일 수 없는 주관적인 산물일 뿐이라는 회의주의나 역사적 사실이란 현재에 복무할 수 있을 때만 그 가치를 지닌다는 실용주의를 넘어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은 평등의 관계에 있으며 역사 집필 과정에서 두 가지가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역사가 형성된다고 한다. 에드워드가 집필한 역사란 무엇인가는 총 6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에서는 방금 설명한 회의주의와 실용주의가 있고, 제2장 [사회와 개인]에서는 사회와 개인은 어떤 관계로 파악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며 역사적 사회적 환경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에드워드는 사회를 떠난 개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며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가와 서술하는 그 역사 속의 개인들은 당시의 사회적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로 인해 에드워드는 우리에게 역사를 연구하기 전, 역사가를 먼저 연구할 것을, 그리고 그 역사가를 연구하기 전에 그의 역사적 사회적인 환경을 먼저 연구할 것을 제안한다. 제3장 [역사와 과학과 도덕]에서 에드워드는 역사가 과학임을 여러 방면으로 증명한다. 에드워드는 절대적이고 초역사적인 가치라는 것은 사실상 그 뿌리가 역사 속에 박혀 있는 것이고 사회와 역사로부터 유리된 추상적인 기준이나 가치는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글을 써냈다. 제4장 [역사에서의 인과 관계]에서는 인간 행위에는 원칙적인 밝혀낼 수 있는 원인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글을 볼 수 있다. 에드워드는 이것이 결정적인 입장으로 봤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그것들의 변화가 없는 한 그 일에는 변동이 없다는 신념이라고 정의했다. 역사에서의 인과 관계는 역사가가 자기 목적에 대해 의의를 가지는 사실들을 골라내는 것처럼 다수의 인과 연쇄 중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것들만 추출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제5장 [진보로서의 역사]에서는 진보의 개념이 논의된다. 진보는 진화와 달리 인간이 획득을 통하여 자신의 가능성을 발전시켜 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한다. 제6장 [넓어지는 지평선]에서는 여러 가지 부정적인 측면과 그에 따른 희생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발전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이 지속해서 증대되고 인간이 이성의 의식적인 활용을 통해서 환경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또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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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에드워드 카와 랑케의 입장은 이렇게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 랑케는 과거에 일어났던 객관적 사실의 복원을 목표로 두고 있으며 시간상으로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모든 사건을 말한다. 역사가는 자신의 시대정신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역사가의 임무는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실증주의를 강조했다. 그에 반면 에드워드는 과거의 사실을 주관적으로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으며 과거의 사실을 역사가가 재구성하여 주관적으로 기록한 것이고 역사가의 가치 판단이 주관적으로 개입된다면 역사는 언제든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역사란 모든 사실이 아니라 역사가가 특별히 의미 있다고 선정하여 기록된 과거라 주장하는 상대주의를 강조한다.

나는 두 개의 실증주의와 상대주의를 알아보면서 과연 어떤 입장이 사실과 가까울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내가 만약 하나의 입증에서 나의 의견을 주장해야 한다면 어떤 입장일까. 나는 아마 실증주의의 편에서 내 의견을 펼쳤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들어본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조선의 첫 번째 왕 태조에서부터 스물다섯 번째 왕인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왕의 이야기는 물론 조선의 사회와 문화 백성의 삶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 조선왕조실록은 과연 어떻게 만들었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죽은 후 만들었다. 왕이 죽으면 실록청이 설치되고 실록청에서는 실록을 만들 자료를 모은다. 사관이 왕을 따라다니며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사초와 각 관청에서 업무를 기록한 시정기 등을 바탕으로 실록 작성을 맡은 사관이 실록을 완성한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상대주의보다는 실증주의가 더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떤 점이 정말 확실한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역사는 늘 잊으면 안 되는 것이고, 항상 중요한 것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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