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 스타워즈 주인공은 되고, 흑인 인어공주는 안 된다.

얼마 전 배우 이정재가 ‘오징어 게임’ 드라마로 에미상을 받는 쾌거를 거뒀다. 더불어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주인공에 발탁되었다. 미국계 동양인도 아닌, 국내에서 연기 입지를 다져 외국 시리즈의 주인공이 된 사례는 드물었기 때문에 이정재의 주인공 발탁 소식도 한동안 뜨거운 감자였다. 아직 촬영도 들어가지 않은 스타워즈는 그렇게 두 팔 벌려 환영하며 일명 한류의 열풍이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여론은 기대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곧 개봉을 앞둔 디즈니사의 ‘인어공주’는 그리 뜨거운 반응을 얻지 못했다. 혹자는 ‘원작 파괴’라 말하고, 어떤 이는 ‘동심파괴’라 말한다. 인어공주를 새로이 캐스팅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이미 일차적으로 공개된 영상을 한 트위터 사용자(@TenGazillioinIQ)가 백인으로 ‘화이트 워싱’하는 예도 있었으며, #NOTMYARIEL이라는 해시태그 운동까지 벌였다.

 

© 디즈니
© 디즈니

 

‘동양인 스타워즈 주인공’은 되지만, ‘흑인 인어공주’는 안 되는 것일까? 인어공주가 흑인이라는 것이 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일까? 최근 디즈니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함에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PC’ 함의 대표적 예시로는 동성애 코드, 흑인이나 동양인 배우 캐스팅, 여성 서사 등이 있는데 이와 같은 ‘PC’ 함이 마치 콘텐츠의 질을 저하한다는 것처럼 평론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 극단적으로는 한국에서 개봉했다 하면 보장된 인기를 끄는 ‘MALVEL’ 시리즈 중 ‘토르: 러브 앤 선더’ 만은 6점대에 그친 혹평을 받았던 예가 있다. 혹평 중 대다수는 지나친 동성애자 코드나, 여성 서사의 집중으로 토르의 이야기가 적게 나와 원작 서사의 본질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또한, 해당 영화의 평 중 가장 공감을 산 말은 ‘너무 어린이 영화가 되었다’라는 것이었다.

자, 다시 이번 흑인 인어공주의 논란으로 돌아가 보자.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쓰는 디즈니에서 예전 만화가 아닌 실사화 영화에서 흑인을 인어공주 역에 캐스팅한 것을 불평하는 것은 누구일까? 대부분 인터넷을 쉽게 이용하는 어른들의 의견뿐이다. 슬하에 자식을 둔 부모들이 SNS에 올린 아이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흑인 인어공주가 노래하는 모습을 본 아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인어공주에 매료되었다. 또한, 인어공주가 나와 같은 모습이라는 것에서 놀라움을 자아냈다. 어쩌면 이런 반응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보는 콘텐츠 속에 ‘여러 인종의’ 공주님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 아닐까?

전국시대 초나라의 한 우화가 있다. 어떤 이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도중 들고 있던 칼을 물속에 빠뜨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단검을 빼내어 칼을 떨어트린 뱃전에 칼자국을 내어 표시했고, 배가 건너편 나루터에 닿자 칼자국이 난 뱃전 밑 물속으로 뛰어들었다는 내용이다. 이를 가리켜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고사 성어가 유래되었다. 이는 현재 ‘흑인 인어공주’에 대한 반발을 일으키는 이들과도 일맥상통한다.

 

© 대전일보
© 대전일보

 

한국은 20년도 기준 외국인 222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2015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다문화 사회 속에서도 인종차별적 시선은 22년도가 된 지금도 여전하다. ‘흑인 인어공주’에 대한 반발을 통해 더욱 선명히 드러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미 좋든 싫든 우리 주변 외국인 주민은 늘어나고 있고, 우리의 이웃이나 더 나아가 가족이 될 수도 있는 다양한 인종 중 한 인종이 어떤 영화의 주인공을 맡는다고 해서 거부감을 느끼고 반대하는 건 흘러가는 시대를 붙잡겠다고 배에 칼로 표시를 해놓는 것과 다름이 없다. 더욱 다양해지는 시대의 흐름에 맞춘 디즈니 ‘흑인 인어공주’를 거부할 것이 아닌, 이 흐름에 몸을 맡기고 더 다양해지는 콘텐츠를 즐기는 쪽이 어쩌면 변화하는 시대 속 현자의 행동일 것이다.

전례 없이 동양인의 에미상 수상을 이룬 ‘오징어 게임’ 팀이라던가, 영어권 시리즈에 주인공으로 발탁된 한국 남자 배우 ‘이정재’를 생각해 본다면, 흑인 인어공주도 그리 먼 이야기만은 아니지 않을까? 이건 그저 모두를 위한 영화일 뿐이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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