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을 담는 그, 클로드 모네

세계에는 여러 유명한 화가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알아볼 화가는 1800년대의 화가 클로드 모네다.

클로드 모네는 프랑스 출신의 화가다. 당시에는 유명하지 않은 무명의 화가였으나, 그는 꾸준하게 그림을 그렸다. 그는 그림만 그리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으나,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모네의 그림을 후원해 주는 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의 모델이었던 카미유를 사랑하게 된다.

 

 

출처: 김수연
출처: 김수연

 

모네는 빛에 집착하였다. 사실적인 모습을 묘사한 그림을 그리지 않고, 그는 자신의 눈에 비친 형체들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클로드 모네가 빛과 카미유 외에 사랑한 것이 또 있었다. 바로 자연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으로 돈을 벌면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정원을 만들어 꽃을 키웠다.

또한 그는 연못에 작은 배를 놓고 그 위에 작업실을 만들고 그곳에서 종종 그림을 그렸다. 물에 비쳐 빛에 번지는 사물을 그리고 싶다는 이유였다.

갈수록 그는 빛에 관한 집착이 커져만 갔다. 그의 그림을 후원하던 피사로 외 몇 명의 친구들은 돈을 모아 모네를 여행시켜주었다. 그렇게 모네가 자연의 광경을 찾아 떠난 도중 바다에서 그린 것이 1872년에 그린 ‘인상, 해돋이’다. 물과 빛은 자연의 모습을 극한으로 비춰주었다. 그리고 모네는 자신의 눈에 비친 그 광경을 바다 위에서 그려내었다.

1874년 어느 날,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나다르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가게 된다. 그곳에 모인 화가들은 모두 무명이었고, 모네 역시 마찬가지였다. 루이 르루아는 그의 그림을 보고 “인상적이다”라고 비꼬았다. 여기서 인상은, 현재 우리가 아는 인상주의의 그 뜻이 아니라, 그림이 현실적이지 않고 대충 그린 것 같다는 뜻이었다. 당시 인상주의는 작품으로써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조롱의 의미로 모네와 그와 비슷한 그림을 그리던 이들을 주변에서 인상파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모순적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인상주의 작품들과 그것을 그린 화가들은 천재성을 인정받고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훗날 지금처럼 말이다.

모네는 빛의 비침에만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담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같은 자리에 앉아 매일 자기 눈에 보이는 같은 광경을 그려내었다. 모네는 자연이 변화하는 모습을 담기 위해 온종일 캔버스를 들고 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데에 힘을 쏟아냈다. 이러한 모네의 집착을 담은 작품에는 연작으로 그린 ‘수련(1912~1914)’ 등이 있다. 이맘때쯤 모네는 작품을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정원 관리에도 힘썼다.

 

 

출처: 김수연
출처: 김수연

 

그림으로 드디어 원하던 부를 얻게 된 모네였으나, 또 다른 시련이 그를 찾아왔다. 카미유와 친했던 친구들을 떠나보낸 충격으로 건강이 악화하고 특히 눈이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모네의 노력이 무색하게, 전쟁에 참여했던 그의 아들마저 전사하면서 모네의 시력은 급격하게 나빠져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그는 전사한 아들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수련의 연작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모네는 나빠진 자기 눈이 아니라 자신이 기억하던 자연의 모습들, 빛의 비침을 바탕으로 ‘수련’을 완성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모네의 마지막 ‘수련’의 연작은 훗날 인상주의의 의미가 단순하게 색채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모네가 상상으로 그렸던 것처럼 다른 의미의 해석이 나오게 하였다.

 

 

출처: 김수연
출처: 김수연

 

당시 비평가들과 주변 화가들은 모네의 눈을 높게 평가했다. 자주 접하여 무디게 받아들이던 자연의 모습을 모네는 빛의 비침으로 보고 해석하고 그려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네의 작품들이 단순하게 색채들이 조화롭다거나, 특이하다는 이유만으로 현재까지 극찬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진심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빛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이 작품에 드러나기 때문이지 않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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