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잃어버린 지갑을 노숙인이 주워다 준다면 우린 어떻게 반응할까. 어렸을 적부터 누군가를 차별하고 살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우리는 자연스레 나와 맞지 않거나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거리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내가 잃어버린 지갑을 길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이 주워줬다고 한다면 나도 모르게 지갑 안에 들어있는 게 제대로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지 않았을까?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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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70대 사장님의 지갑을 주워 준 인연으로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던 ‘독고’라는 남자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처음엔 말도 어눌하고 느릿한 행동 때문에 모두들 의구심을 가지게 되지만, 손님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독고의 따뜻함에 동료로 받아들이게 된다.

편의점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이 묻어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아르바이트생 시현과 생계를 위해 일하는 50대 오 여사, 밤마다 야외 테이블에서 편의점 음식을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회사원 경만 등 연령마다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보여준다. 소설 속 지어낸 것 같은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 또는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꾸밈없이 들어간 등장인물들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어, 에피소드마다 깊게 공감했다.

ⓒ실버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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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편의점 알바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나 또한 일을 하다가 노숙인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케케묵은 냄새와 술에 잔뜩 취해 꼬인 혀로 호통을 치시며 얘기하셨다. 그때는 알바를 시작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무서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바로 앞 파출소에 전화했다. 사실 그분은 나에게 해를 가한 것도 아니었는데 되려 겁부터 먹었다. 경찰 소동이 있고 난 후에도 계속 우리 편의점을 찾아오셨다. '대화를 해보자.'라며 마음을 먹고, 말을 계속 붙이니, 그분도 웃으면서 자신의 자초지종을 마구 얘기하셨다. 그 후로는 계산할 때도 장난도 치면서 한결 편해졌다. 그분의 얘기를 하루 이틀 듣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말동무가 필요하셨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겁먹고 신고부터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나에 대해 태도가 달라졌던 노숙인 분을 보며,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려 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엄청난 베풂이 필요한 건 아니다. 이웃을 향한 조금의 관심이 사람 하나를 바꿀 수 있다. 나는 단지 아르바이트생이었지만, 매일 찾아오는 그분을 만나며 잠시 이야기를 들어드린 것만으로도 표정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책 속의 사장님처럼 일을 하게 해드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사람의 '얘기'에 집중해 주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다.

코로나19라는 시국을 겪으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생겨나고 그만큼 우리는 이웃과 더 멀어졌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 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져 갔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그동안 놓쳤던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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