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고 말하자 - '여름과 루비' 편

 

 여름과 루비는 시인 박연준의 장편 소설이다. 일곱 살인 여름이 학교에 들어가 루비라는 친구를 만나며 어른 시절의 비밀, 감정을 공유했던 그때 그 시절, 유성우 같았던 나의 유년 시절을 되새기는 이야기다. 처음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여름은 처음으로 겪는 시작과 끝 사이에서 헤매다가 자신의 끝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오시연
ⓒ 오시연

 우리는 한순간에 어른이 되지 않는다. 여러 시간과 아픔을 견뎌 마침내 어른이 된다. 그전에 흔히 청춘’, ‘유년이라는 순간들을 겪는다. 모든 게 그렇지만 유독 청춘과 유년 시절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짧고 굵다.’라는 말이 괜히 있을까. 우리는 짧게 느끼지만 그 순간을 통해 우리는 앞으로 살아갈 생에서 다양한 것을 남기고 배운다. 신기루 같던 시절은 이렇게 우리에게 어떤 무언가를 남기고 사라진다. 그러나 작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글 속 주인공인 여름루비는 지극히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그러나 모두 똑같을 수는 없듯이 조금은 다르고 특별한 그 순간들이 있다. 그런 장면들이 머리에서 그려질 때 나는 생각했다. ‘여름루비는 많이 성숙한 아이, 일찍 철든 아이, 조금 더 편하게 말하면 애어른’? 글을 쓰는 건 작가의 마음이겠지만, 독자로서는 조금 의아했다. 요즈음 사회가 철든, 성숙한 아이를 추구했던가. 아니, ‘애어른을 긍정적으로 봤던가? 최근 뉴스나 유튜브 등 찾아봤을 때 마냥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얼마 전까지는 긍정적으로 보기도 했다. 나이와는 다르게 일찍 철들어 어른들을 잘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한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조금 달라졌다. 아마 일찍 철들었다고 생각한 그들이 조금씩 엇나가고 문제가 생겼을 때부터일까. ‘애어른뿐만 아니라 나이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것을 마냥 좋게만 보지는 않는 게 요즘 사회의 시선이었다. 그런데 왜 작가는 애어른같은 여름루비를 그렸을까.

 

 이 의문은 책의 내용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분명히 의도가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일까. 혹은 이 의문이 쓸데없는 의문일까. 나는 보통 책을 읽을 때 마지막 작가의 말도 읽는다. 왠지 그 부분까지 읽으면 작가와 소통하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이번 책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었는데 앞서 말했던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 오시연
ⓒ 오시연

유년이라는, 벗을 수 없는 옷을 입은 채 커버린 사람 곁에 서 있고 싶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한 가지를 느꼈다. 작가는 애어른같은 아이의 모습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여느 아이들처럼 그들도 아이라는 것을, 누구나 아이 같은 유년이라는 시절을 계속 입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구나. 짧고 굵게 많은 것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내가 생각한 유년과는 달리 작가는 벗을 수 없는 옷인 유년을 말하고 있던 것이었다. 작가의 의도를 알게 된 순간부터 가졌던 의문은 사라졌다. 그저 우기였다.

 

 

 

 

 

 

 

 

 

 

 

 

 

 

                        ⓒ 오시연
                        ⓒ 오시연

 작가는 본래 시인이라서 그런가 한 문장마다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여느 장편 소설과는 다르게 한 단편 소설씩 나누는 것처럼 이야기가 흘러갔다. 단편 소설 같은 느낌을 띄우는 장편 소설은 오랜만이었기에 읽을 때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머리에서 바로 그려지는 장면들과 오래 남는 여운 때문일까. 그저 좋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비평하고자 읽기 시작했던 책인데 좋기만 하다니. 이 작가의, 아니 시인의 팬이 되기만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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