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단연 이곳에서 먹은 것을 말할 것이다. 마침 여정 동안에 나의 생일이 끼어 있어, 함께 간 친구가 특별한 곳에서 식사하자고 먼저 제안해 줬다. 바로 제주 서남쪽에 위치한 '두 엔데'라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우리가 먹은 건 보테로라는 소 볼살 구이와 뿔뽀라는 문어구이였다. 프라이빗하게 독채 공간에서 먹게 되었는데, 왠지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 더 좋았다.

ⓒ안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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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요리뿐만 아니라 토마토가 올려진 애피타이저와 곁들여 먹는 배추 구이, 무알코올 샹그리아 모두 빠짐없이 근사했고, 맛있었다. 이때 먹은 음식은 단순히 '맛'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공간이 주는 특별함, 음식에 담겨있는 정성, 그리고 생일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준 친구의 따스함 때문에 이곳에서의 식사가 정말 행복했다. 미각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다 잊히지만, 음식을 먹으며 느꼈던 감정들은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안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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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효리네 민박'이라는 예능을 통해 가수 이효리의 집이 공개됐다. 방송을 볼 때, '가보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이효리의 집이 아닌, 소길별하라는 편집숍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방송에서 봤던 그 공간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들이 묵고 간 자리, 웃으며 함께 밥을 먹었던 부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사진을 찍었던 거실 등 지나간 사람들의 추억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수 아이유가 앉아서 책을 읽으며, 초콜릿을 까먹었던 곳으로 알려진 자리에 앉아 받은 커피와 감귤과즐을 먹었다. 사람은 많았지만,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을 만끽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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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아르떼 뮤지엄 제주라는 곳이다. 흐려 날씨 탓에 갑작스럽게 가게 되었는데, 예상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명화, 자연, 동물, 빛 등을 주제로 하여 미디어아트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이전에 한 유튜버가 이곳에 방문하고 '온종일 앉아서 감상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남아서 표시해둔 곳이었다. 꼭 들러보자는 장소는 아니었기에, 큰 기대는 안 했었는데 정말 유튜버가 한 말 그대로였다. 시간이 정말 더 많았다면 그냥 가만히 앉아서 작품을 감상하고 싶을 만큼 몰입감이 엄청났다. 거대한 미디어아트로 구현되는 명화들은 휴대폰 너머로 보는 느낌과는 또 달랐다. 마치 내가 그 그림 안으로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르떼 뮤지엄 제주는 과거 스피커 제조 공장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버려질 뻔한 이 넓은 공간이 미디어 아트라는 전시 공간으로 업사이클링 되어, 다채로운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게 공간 재구성의 순기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의 제한으로 인해 직접 접하지 못하는 명화들을 미디어아트 전시관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아르뗴뮤지엄제주를 통해 작품들뿐만 아니라 공간의 미학을 깨닫게 되어, 더욱 값진 경험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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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다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든 것이 월정, 김녕 해변이었다면 '사려니숲길'에서는 제주 숲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여행 전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수집했을 때, 이곳은 비가 조금 내릴 때 가면 살짝 안개가 껴, 더 분위기 있어진다고 했다. 제주에 도착하고부터는 계속 맑은 날씨 속에서 여행을 즐겼는데, 마침 사려니 숲길로 향할 때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날씨의 요정'이라며 서로를 칭찬하며 기분 좋게 향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미리 준비했던 우비를 꺼내 입고, 숲길을 걸었다. 살짝 축축한 느낌의 숲길을 걸으며, 마스크도 벗어던지고 숲의 향기를 마구 맡았다. '아, 이래서 다들 자연을 찾아 떠나는구나'하고 느꼈다. 여행의 종착지는 결국 자연인 것 같다. 바쁜 일상에 쫓겨, 차마 즐기지 못했던 삶을 조금 더 여유롭게 즐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기분 좋은 빗소리와 함께 거닐었던 숲길에서의 기억은 '힐링'으로 남아있다.

가는 곳마다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던 여름의 제주는 아직도 나에게 깊게 물들어있다. 이때의 행복한 감정들은 지금의 내가 더욱 힘차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여행은 마치 뒤도 안 돌아보는 나에게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돼."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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