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포토콘텐츠

 “이번 역은 홍대 입구, 홍대 입구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2호선 및 경의중앙선 열차를 이용하실 고객께서는 이번 역에서 갈아타시길 바랍니다. This...”
두 번째다. 벌써 두 번째 이 방송을 듣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아주 오래 그저 덜컹덜컹 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 망할 지하철은 내가 지금 어디인지 계속 알려준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에 중국어까지 아주 4개 국어로 난리다.
‘도망치고 싶을 때 듣는 플레이 리스트’에서는 이제 ‘이별 택시’가 나온다. 

 

@언스플래쉬
@언스플래쉬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우는 손님이 처음인가요. 달리면, 어디가 나오죠. 빗속을...’
- 이별택시, 김연우 -


 나도, 그러고 싶었다. 도로에 나오면 짠하고 택시가 내 앞으로 달려오고. 나는 택시에 올라타 그냥 창가에 기대어 멍하게 밖을 바라본다. 기사님은 나보고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고, 대답이 없는 나를 답답해할 무렵, ‘그냥,, 그냥 앞으로, 계속 달려주세요’라는 내 말에 의아해하시면서도 계속 달려주시는. 그런 도망을 꿈꾸고 나왔단 말이다.
그런데, 도로에는 아무리 기다려도 택시는 오지 않았다. K 택시를 부르지 않으면 이젠 택시를 탈 수도 없단 말인가! 이게 말이 되는가! 좀 없어 보여도 지도에서 젤 먼 곳을 찍고 택시를 불렀지만, 잔고가 부족하다며 자동 결제가 취소되었다. 택시가 오지 않은 게 다행일지도.
그렇게 내가 선택한 건 지하철이었다. 지금 내 잔고로 멀리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은 지하철이 최선이었다. 대중교통은.. 후불이니까. 미래의 내가 이 정도는 갚을 수 있겠지.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몸을 싣고 처량한 척하고 싶었는데, 지하철은 다 종점이 있었다. 내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이 있다는 뜻이었다. 난 아주! 4시간 정도 슬픔에 잠겨 있고 싶었는데! 돈이 없으면 마음껏 슬프지도 못 한단 말인가! 비운의 여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나는 분노에 휩싸였다가 순환선인 2호선을 선택했다. 정말, 아주 처량하다.

 

@언스플래쉬
@언스플래쉬

 

 “이번 역은 이 열차의 종착역인 성수, 성수역입니다. 동대문, 의정부 방면으로 가실 분들은 이번 역에서 다음 열차를 이용하시고, 을지로, 시청 방면으로 가실 분들은...”
젠장, 좀 슬퍼지나 싶었더니 이 순환열차도 종점이란다. 나는 또 슬픔에서 쫓겨났다. 기왕 열차에서 내린 김에 아예 나가볼까.
내려도 어떻게 이 번화가에 내리는 건지, 천천히 슬픔에 빠진 채 걷고 싶었는데. 뒤에서 떠밀려서 거의 경보로 걷고 있다. 정말 날 가만히 두지 않는 구만.
…추가요금, 이 정도는.. 미래에 내가 내겠지. 할 수 있을 거야. 그럼, 그렇고말고.

 밤바람이 차다. 이 차가움을 즐기고 싶지만, 귀가 너무 따갑다. 다들 뭐가 저렇게 재밌는 걸까. 누구랑 놀고 있는 걸까. 잘 못 내린 것 같다. 여긴 슬픔을 느끼기엔 너무 즐거운 곳이다.

내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긴 할까?
마음 한편엔 막차 시간을 신경 쓰고 있는 내가?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내가?
슬슬 따뜻한 카페에 들어가고 싶은 내가?

집에 가자. 집에,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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