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인물 전태일과 조영래를 기억하다
‘대구의 인물 전태일과 조영래를 기억하다.’인 만큼 대구를 보면 떠오르는 것들을 물어보며, 화면에 처음 보는 인물인 두 사람을 보여준다. 이분들을 아시느냐고 물어본다. 성함을 듣자마자 탄식을 내뱉었다. 상징적인 얘기를 하면서 기억해야 할 만한 인물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나라가 경제의 기반을 만들 당시 경제는 많이 성장했지만, 그에 따른 막강한 노동이 노동자들을 따랐다. 밤낮없이 노동하면서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노동자들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끝은 아마 과로사가 제일 많을 것이다. 전태일이란 사람이 죽고 나서 왜 아직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기억되고 남아있을까?
전태일의 마지막 소망 ‘내 죽음 헛되이 말라’. 자신이 죽음으로써 일어나는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전태일이라는 사람이 바라는 소망대로 일이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하였다. 1970년 11월 13일 왜 이 사람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죽음을 맞이하려고 하였나. 그 당시 전태일의 나이는 23살, 꽃다운 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다. 어떻게 젊은 나이에 죽음을 결심할 수 있었나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전태일의 일생을 본다면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인해 아주 어린 나이에 부산으로 피난 갔다. 피난 가면서 굉장히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 시절이면 당연히 보편적으로 가난하게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태일 열사의 집안은 더더욱 가난했다. 가계는 힘들어지고 동생은 보육원에 보내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전태일의 소원은 자신이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영어 단어를 하나만이라도 외우고 싶어 했을 정도로 말이다.
전태일의 일기 중에는 서울에 상경했다가 다시 대구로 돌아왔을 때의 그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글이 있다. 나는 봉사를 하러 갔을 때나 누구에게 배움을 받을 때 말고는 살아감에 있어서 사소한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기 힘들었다. 느낄 새도 없었다는 게 맞는 표현 같다. 전태일은 자신의 행복감과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는 것이다. 맑은 대구의 하늘을 표현하며 내일이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살아있는 인간임을 진심으로 감사했다고 얘기하는데 이렇게 공부하기 좋아하고 살아가기 감사했던 사람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정도의 일이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였다. 전태일은 어려워지는 사정에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로 상경해서 일해야 했다. 한 달 월급은 1500원. 하루 하숙비가 120원인데 일당 50원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모자라는 돈을 채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뛰어들어서 했고 뼈가 휠 정도로 고된 일이었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분의 피곤함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이렇게 어렵게 돈을 벌면서 가장의 역할을 한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였다.
전태일은 시간이 지나고 기술을 배워서 재단사가 된다. 재단사는 관리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재단사가 되면서 자신이 몰랐던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종업원 대부분이 여자였고 나이도 어렸다. 14시간 동안 일하면서 자신의 몸을 혹사하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전태일은 이런 근로를 하면 절대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변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재단사의 모임을 주도하였고 ‘바보회’라는 집단을 만들게 된다. 근로기준법을 공부하고 불법적인 일들에 대해 정부에 탄원서도 넣는 일을 한다.
이때 조영래라는 변호사가 나타난다. 이 사람은 전태일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다. 조영래는 조작 사건으로 인해 수배를 받는 중에 전태일이 분신한 날 전태일을 알게 된다. 전태일의 죽음은 단순한 노동자의 죽음이 아닌 우리 사회에 있는 지식인들을 일어서게 했다. 이 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의 권리와 혜택을 보장해 준 것이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아직 노동환경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일은 노동에 대한 모든 것을 흔들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졌다. 조영래는 전태일의 일생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책을 만들었다.
책은 노동환경을 바꾸었고 사람들의 인식까지 모조리 바꿔놓았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부당한 일들을 바꿔놓으려 노력했다는 거에 큰 감명을 받았다. 자신이 재단사라는 직업까지 올라간 것이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당한 일을 모른 척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그는 모른 척 눈 감지 않았고 일에 대한 진상들을 세상에 알리려고 자신을 내려놓았다. 그의 희생이 많은 것을 바꿔놓은 것이다. 그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