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ocus > 스포츠
127년, 리버풀 FC의 역사 #8
배웅기  |  baeverpool@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5.28  17:27:0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텔레그래프

2012~2015

시즌 초반 부진을 거듭하던 리버풀은 2012년 8월 29일 노리치 시티 원정 경기 5-2 승리를 기점으로 서서히 반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들쑥날쑥한 경기력은 여전히 리버풀의 약점이었고, 디르크 카윗, 막시 로드리게스, 앤디 캐롤 등의 선수를 너무 섣불리 내보낸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야심차게 영입한 파비오 보리니의 경기력이 부족했고, 루이스 수아레스만 고군분투할 뿐이었다.

누리 사힌의 포지션 문제도 대두됐다. 브랜든 로저스 감독은 사힌을 중앙 미드필더보다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임대 영입한 만큼 많은 기대감을 받고 있었지만 실패로 끝을 맺었고, 사힌은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친정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재임대 이적했다. 그리고 리버풀의 운명을 바꿀 두 명의 선수가 합류했다. 2013년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영입된 필리페 쿠티뉴와 다니엘 스터리지였다.

당시 쿠티뉴의 영입은 많은 비판을 받았었다. 웨슬리 스네이더를 영입할 수 있는 상황에서 유망주 쿠티뉴를 영입했기 때문이었다. 스터리지 또한 첼시에서 '말칼보스(말루다-칼루-보싱와-스터리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비난받은 만큼 호불호가 갈렸다. 하지만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두 선수는 그런 비판들을 종식시켰다.

   
▲ ⓒ디스 이즈 안필드

쿠티뉴의 센스는 프리미어리그 최고 수준이었다. 빈 공간을 억지로라도 찾아내는 패스는 일품이었고, 스터리지의 골 결정력은 최고였다. 수아레스와 호흡도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리버풀의 후반기 성적은 가히 최고였다. 리버풀 팬들도 전반기와 달리 큰 기대를 가지기 시작했다. 리그 성적은 7위였지만 전반기에 부진했음을 감안했을 때 최고의 결과였다.

로저스의 축구도 리버풀에 뿌리를 내렸다. 스완지 시티 시절처럼 오직 티키타카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활용한 리버풀의 축구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2013-14시즌이 시작됐다. 수비진 강화를 위해 콜로 투레, 마마두 사코, 티아고 일로리 총 세 명의 중앙 수비수가 합류했다. 전 시즌 스터리지 영입으로 쏠쏠한 재미를 본 리버풀은 첼시로부터 빅터 모제스도 임대 영입했다.

해당 시즌 주전으로는 뛰지 못하고 있었던 존 플라나간, 라힘 스털링이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했고,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파괴력을 조금 잃은 스티븐 제라드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 역할로 전환했다. 로저스는 공격 파괴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4-4-2 다이아몬드 전술을 선택했다.

수아레스 스터리지

스털링

쿠티뉴(앨런) 헨더슨

제라드(C)

플라나간 사코 스크르텔 존슨

미뇰레

   
▲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4-4-2 다이아몬드 전술은 중앙 지향적인 탓에 측면이 부실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중앙 미드필더들이 때에 따라 포지셔닝을 넓게 가져가며 수비를 지원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점률이 높긴 했지만 3골을 내주면 4골을 집어넣는 '조 본프레레식 축구'는 리버풀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 스털링-스터리지-수아레스의 SSS 라인은 리그 역대 최고로 둬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리버풀은 폭발적인 공격력으로 리그 1위를 수성하고 있었고, 리그 출범 이후 첫 우승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16위 헐 시티(53실점)와 3실점밖에 차이 나지 않는 수비력(50실점)이 발목을 크게 잡았고, 결국 시즌 막바지 첼시와의 홈 경기에서 치욕스러운 패배를 당하며 맨체스터 시티에게 우승 트로피를 내줬다. 크리스탈 팰리스 원정 경기에서 우승을 놓침을 직감한 수아레스는 펑펑 울었고, 리버풀의 2013-14시즌은 새드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로저스 아래 리버풀은 다시 최고의 팀으로 군림했다는 기대가 있었다. 공격력은 이미 검증됐다. 부족함이 있었던 수비진만 보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팰리스와의 경기에서 오열하고, 자녀를 머지사이드 학교에 등록시키기도 하며 이적설을 종식시킨 수아레스가 바르셀로나로 깜짝 이적했다. 수아레스는 많은 이적료를 남기고 떠났지만 출혈은 막을 수 없었다.

   
▲ ⓒ리버풀 에코

수아레스의 대체자로는 2013-14시즌 선더랜드에서 성공적인 임대 생활을 보낸 보리니가 복귀했고, 마리오 발로텔리와 리키 램버트가 합류했다. 특히 램버트는 사우스햄튼 시절 수아레스와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로 평가받고 있었고, 발로텔리 또한 클래스가 있는 선수였다. 데얀 로브렌, 알베르토 모레노, 아담 랄라나, 라자르 마르코비치 등까지 합류하면서 더할 나위 없는 여름 이적시장을 보낸 리버풀이었다.

그렇게 야심차게 맞이한 2014-15시즌, 리버풀의 전 시즌 경기력은 사라졌다. 물론 수아레스의 부재가 크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 선수들은 제라드가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 위치에 있을 때 파훼법을 알아냈고, 스터리지는 부상으로 쓰러졌다. 스털링은 한층 성장했지만 수아레스를 대신해 팀을 이끌어가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오랜만에 출전한 UEFA 챔피언스리그에선 바젤에게 뒤진 조별예선 3위로 탈락했고, UEFA 유로파리그 32강에선 베식타스 JK에게 일격을 당했다. 리그 순위는 6위. 최악이었다.

성적뿐만이 아니었다. 리버풀에서 주전 자리를 잃은 제라드가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이적을 선언했고, 안필드에서 마지막 경기는 팰리스에 1-3으로 패한 데다 최종전 스토크 시티 원정 경기에선 1-6으로 패했다. 특히 이적설이 나돌던 스털링이 벤치에 앉아 비웃는 모습은 리버풀 팬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리버풀은 한 시즌만에 구렁텅이에 빠진 것이었다.

   
▲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공식 홈페이지

로저스를 경질해야 한다는 여론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 기대치 또한 로저스가 높였지만 2014-15시즌의 성적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리버풀 운영진은 로저스를 한 시즌 더 믿기로 결정했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 결과가 나다니엘 클라인, 조 고메스, 호베르투 피르미누, 대니 잉스, 크리스티안 벤테케 등의 영입이었다.

하지만 성적은 달라지지 않았다. 쿠티뉴가 고군분투하면서 어떻게 승점을 챙기긴 했지만 경기력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피르미누, 벤테케의 시즌 초반 부진으로 최전방에선 잉스가 팀을 이끌었다. 결국 에버튼과의 머지사이드 더비, 엠레 찬의 큰 실수가 스노볼이 됐고 로저스는 경질됐다. 위르겐 클롭,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등이 후임 감독으로 거론되고 있었고,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생활을 끝으로 안식년을 보내고 있던 클롭이 리버풀의 연락을 받게 된다.

그렇게 리버풀의 붉은 제국은 다시 한번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배웅기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회사소개기사제보제휴·광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내리리 15  |  대표전화 : 053-850-6296  |  청소년보호책임자 : 류성진
Copyright © 2014 M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