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버풀 에코

2010~2012

리버풀 영광의 시대를 이끈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은 7위라는 프리미어리그 성적을 뒤로 하고 팀을 떠났다. 후임 감독은 풀럼 출신 명장 로이 호지슨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스위스 히딩크'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었고, 인터밀란 등 명문팀을 지도한 경력이 있었다. 전 시즌 풀럼을 이끌고 UEFA 유로파리그에서 유벤투스를 격파, 결승전에 진출한 것을 리버풀 운영진이 높게 평가한 듯했다.

호지슨은 리버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풀럼 좌측면 수비수 폴 콘체스키를 영입했고, 유벤투스 출신으로 시즌 직전 FIFA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한 크리스티안 폴센을 데려왔다. 잉글랜드 최고의 테크니션 조 콜, 유망주 대니 윌슨, 존조 쉘비까지 합류하면서 나름대로 괜찮은 이적시장을 보낸 듯했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고, 요시 베나윤과 라이언 바벨이 떠나면서 생긴 출혈을 어느 정도 메꿨다.

나름 기대를 가진 채 맞이한 호지슨의 첫 시즌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본격적인 리버풀 망조가 시작되리란 것을 말이다. 개막전이었던 아스날과 경기에서 1-1로 무승부를 거두고, 페르난도 토레스가 대활약하면서 첼시를 격파하기도 했지만 그 외 대부분 경기에서 승점을 잃었다. 심지어 전반기에는 강등권까지 추락했다. 특히 호지슨이 야심차게 영입한 콘체스키는 리버풀 역사상 최악의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렇게 전반기가 끝나고 리버풀 운영진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호지슨을 경질하고, 1980~90년대 리버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케니 달글리시를 감독대행으로 복귀시켰다. 달글리시는 부임 직후 아약스로부터 슈퍼스타 루이스 수아레스를 영입했다. 하지만 토레스가 겨울 이적시장 종료 직전 첼시로 대형 이적을 감행했고, 리버풀 팬들에게는 수아레스 영입의 기쁨보다 토레스 이적의 충격만이 남았다.

▲ ⓒ디스 이즈 안필드

당시 주장 스티븐 제라드는 토레스가 개인적으로 떠나고 싶어함을 밝혔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한다. 제라드는 "토레스가 떠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심장이 칼에 찔린 기분이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만큼 토레스의 깜짝 이적은 리버풀 팬들에게 큰 충격이 됐고, 배신감으로 돌아왔다.

토레스는 첼시 이적을 통해 리버풀에선 들지 못했던 우승 트로피를 들며 성공적인 경력을 보냈다. 비록 리버풀 시절에 비해 부진한다는 평가는 꼬리표가 돼 따라왔지만 말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토레스는 리버풀을 떠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리버풀 시절 자신의 동영상을 찾아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러한 사연들과 더불어 토레스가 리버풀 자선경기를 통해 안필드에 돌아오는 모습에 팬들 마음속의 미웠던 감정은 이상하게도 눈 녹듯이 사라졌다.

다시 2011년으로 돌아와 토레스를 떠나보낸 리버풀은 대체자를 영입할 시간이 없었고, 당시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제2의 앨런 시어러'라는 평가를 받던 앤디 캐롤을 영입하기 위해 거액을 지불한다. 토레스가 첼시로 이적하면서 남긴 이적료가 5,000만 파운드(한화 약 750억 원)였는데 캐롤이 무려 3,500만 파운드(한화 약 525억 원)였다.

하지만 뉴캐슬 시절 캐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심지어 수아레스의 슈팅 영점 또한 맞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라울 메이렐레스, 막시 로드리게스 등 알짜 선수들이 분투하면서 리버풀은 시즌 막바지까지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경쟁을 이어갔고, 전 시즌보다 한 단계 상승한 6위로 시즌을 마쳤다. 레전드 달글리시의 효과는 실로 명확했다.

그렇게 희망적인 시즌을 마친 리버풀은 달글리시와 정식 감독 계약을 체결했다. 달글리시에게는 리버풀에 없던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가 있었다. 선수 시절에는 풋볼 리그 디비전 1 우승 트로피를 숱하게 들었고, 감독으로선 1995년 블랙번 로버스를 이끌고 기적 같은 리그 우승에 성공한 인물이었다.

▲ ⓒBBC

달글리시는 2011-12시즌을 앞두고 폭풍 영입을 감행했다. 메이렐레스가 첼시로 깜짝 이적한 것이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호세 엔리케, 세바스티안 코아테스, 찰리 아담, 조던 헨더슨, 스튜어트 다우닝을 영입했고, 크레이그 벨라미가 리버풀로 돌아왔다. 수아레스와 캐롤 또한 적응기를 마치고 임하는 시즌이라는 점에서 팬들의 기대감은 컸다.

하지만 2011-12시즌은 리버풀 팬들이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즌이 됐다. 리그 순위 8위.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리버풀이 거둔 최악의 성적이었다. 야심차게 영입한 아담, 헨더슨, 다우닝, 캐롤이 사황이라는 별명으로 엮이며 아쉬운 경기력을 보였다. 디르크 카윗, 벨라미 등 선수들이 고군분투했지만 리버풀의 볼은 골망보다 골대에 더 많이 향했다. 이때 우리나라에선 리버풀의 새로운 별명으로 '골대풀'이 탄생했다.

그래도 우승 트로피를 다시 들어 올렸던 시즌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었다. 달글리시는 국내 컵 대회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칼링컵에서 첼시, 맨시티, 카디프 시티를 차례로 격파한 후 우승했고, FA컵에서도 결승전에 진출했다. 아쉽게 캐롤의 헤더가 골라인을 넘지 않으면서 5년 만의 FA컵 우승은 실패하고 말았다.

▲ ⓒ토크스포츠

하지만 리그 8위라는 성적은 리버풀 운영진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결국 달글리시의 결말도 계약 해지로 끝을 맺었다. 후임 감독으로 다수 감독의 이름이 거론됐지만 이미 중위권 팀으로 전락해버린 리버풀을 맡을 명장은 없었다. 고심 끝 리버풀 운영진은 2011-12시즌 스완지 시티의 '스완셀로나' 돌풍을 이끈 브랜든 로저스 감독과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로저스는 달글리시 아래에서 선 굵은 축구를 추구하던 리버풀에게 '티키타카'를 이식하고자 했다. 볼이 하늘보다 땅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길었던 로저스 축구 아래 캐롤이 팀을 떠났고, 조 앨런과 누리 사힌, 파비오 보리니 등 소위 말하는 '볼 잘 차는 선수'들이 합류했다. 로저스 아래에서 아예 새로운 축구를 배우는 만큼 적응기는 꽤나 길었다. 야심차게 출발한 2012-13시즌 전반기는 보기 좋게… 망했다.

▲ ⓒ리버풀 에코

특히 개막전이었던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과 경기가 압권이었다. 아직 완전히 적응이 끝나지 않아선지 이도 저도 아닌 축구를 선보였고, 상대 선수였던 쇼멘 초이의 피지컬에 압도당하면서 0-3으로 대패한 것이다. 유로파리그 예선에서도 상대적 약팀을 상대로 겨우 승리하는 경우가 잦았다.

또 한 번 쉽지 않은 시즌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쯤 리버풀 팬들은 중위권 팀이 됐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만다. 물론 후반기 본격적인 로저스의 축구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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