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ocus > 스포츠
127년, 리버풀 FC의 역사 #6
배웅기  |  baeverpool@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5.18  16:41:0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디스 이즈 안필드

2005~2010

2005-06시즌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은 모하메드 시소코, 피터 크라우치와 더불어 페페 레이나, 다니엘 아게르까지 영입했고, 레전드 로비 파울러까지 컴백시키며 리버풀 팬들을 만족시켰다. UEFA 챔피언스리그는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진출했다. 리버풀은 2004-05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5위를 기록하면서 4위까지 주어지는 UCL 티켓을 따지 못했는데, UEFA가 디펜딩 챔피언의 대회 출전 여부를 고심하고 있던 중 결국 1차 예선 진출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하면서 웃음 지을 수 있었다.

리버풀은 해당 시즌 사실상 바닥 수준인 1차 예선부터 모조리 뚫고 올라오며 본선 진출권을 따냈다. 이는 UCL 역사상 최초로 있는 일이었고, 리버풀은 16강에 진출하지만 SL 벤피카에게 발목을 잡히며 타이틀 방어에 실패했다.

하지만 리버풀은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바로 '웸블리의 기적'이었다. 이쯤 되면 리버풀은 축구단이 아닌 극장이었다. FA컵 결승전에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극적인 경기를 펼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이다. 이 경기 스코어도 3-3으로 승부차기 끝에 승자가 정해졌는데, 후반 45분 추가시간이 주어지던 시점 스티븐 제라드의 경악스러운 중거리 슈팅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 ⓒ리버풀닷컴

그렇게 기적 같은 시즌을 마무리한 리버풀은 2006-07시즌 프리미어리그 왕좌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항상 리그에선 2% 부족한 모습으로 우승권과 거리가 있었던 리버풀이었고, 베니테스는 UCL, UEFA 슈퍼컵, FA컵에 이어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이적시장에서는 지미 트라오레, 디트마르 하만 등 이스탄불의 기적을 함께한 선수들이 떠나고 파비우 아우렐리우, 디르크 카윗, 크레이그 벨라미 등 알짜 선수들을 영입했다.

시즌 개막 직전 커뮤니티실드에서 첼시를 제압하며 시즌 첫 우승 트로피를 가볍게 들어 올렸고, 리그에선 시즌 초반 부진으로 인해 후반기에 승승장구하고도 3위라는 조금은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UCL에서는 다시 한번 결승전으로 향했다. 2년 전처럼 준결승전에서 첼시를 꺾고 결승전에서 AC 밀란을 상대한 것이다.

이스탄불의 기적 때문에 이를 갈았던 밀란 선수들은 2년 전과 다르게 주도권을 쉽게 내주지 않았고, 리버풀은 1-2로 패하며 베니테스의 두 번째 빅 이어는 아쉽게 무산되고 말았다. 경기 종료 직전 카윗이 추격골을 터뜨릴 때 모든 리버풀 팬들은 2년 전의 기적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모든 영화가 극장에서 흥행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빨토'의 등장

리버풀 팬이라면 모두가 기다렸던 그 순간이다. UCL 우승을 아쉽게 놓치고, FA컵과 리그컵에서는 모두 아스날에게 얻어맞아 탈락했으며, 리그에서는 3위를 거뒀다. 커뮤니티실드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우승 트로피가 없었다. 베니테스는 득점력 부재를 해결할 수 있다면 리버풀이 진정 왕좌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슈퍼스타 페르난도 토레스와 계약을 체결한다.

긴 금발을 휘날리는 미소년이 빨간 유니폼을 들어 올리며 입단 사진을 촬영할 때, 역사는 시작되고 있었다. 마틴 스크르텔, 루카스 레이바 등 현재 리버풀 팬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선수들도 줄줄이 합류했다. 이 시즌부터 제라드가 토레스 밑에 서서 본격적으로 지원사격을 담당했고, 전설의 제토 라인이 탄생한다.

하지만 성적은 오히려 지난 시즌보다 좋지 않았다. 득점력도 올랐고, 승점도 올랐는데 다른 팀이 크게 미끄러지지 않는 바람에 리그에선 4위에 그쳤다. UCL에선 준결승전에서 '또' 첼시를 만났다. 결과는 달랐다. 쉽게 말하면 패했다. 무관에 그친 것이다. 21세기 리버풀에게 최악의 암흑기를 선사한 조지 질레트/톰 힉스 일명 질힉 공동 구단주와 베니테스의 불화설까지 불거지면서 상황은 좋지 않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2008-09시즌을 앞두고 불화는 점점 심해졌다. 이스탄불의 기적 주역이었던 사비 알론소는 당시 리버풀에 있어 필수적인 선수는 아니었고, 베니테스는 중원 보강을 위해 가레스 배리를 영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질힉은 베니테스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공격수 로비 킨 영입에 거금을 투자했고, 이후 배리를 영입할 돈은 없다며 베니테스에게 엄포를 놓았다.

더 이상 질힉에게 저항할 힘이 없었던 베니테스는 알론소를 이적시켜 번 돈으로 배리를 영입하기로 결심했고, 알론소에게 이를 통보한다. 하지만 일이 이상하게 흘러 리버풀의 알론소 요구 이적료를 수락하는 팀은 없었고, 알론소는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정이 상하기 시작했다.

   
▲ ⓒ미러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알론소는 해당 시즌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며 월드클래스로 발돋움했다…. 그야말로 웃픈 상황이 된 것이다. 한 시즌 후에는 알론소가 갑이 됐고, 리버풀은 알론소의 잔류를 바라는 을의 입장이 됐다. 다시 2008-09시즌 중으로 돌아와, 리버풀은 리그 38경기에서 단 2패만을 내주는 경기력으로 리그 우승을 코 앞에 두고 있었다.

특히 리그에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길에 올라 네마냐 비디치에게 평점 0점을 선사함과 동시에 4-1 대승을 거뒀고, UCL 16강전에선 레알 마드리드를 총합 5-0으로 짓밟기까지 했다. 이케르 카시야스는 골문에 들어간 볼을 5번이나 주워야 했다. 리버풀 팬들에게 가장 큰 추억으로 남아있는 순간들이다.

하지만 11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뒀고, 특히 상대적 약팀과 경기에서 너무 많은 승점을 잃어버리며 시즌 막바지 맨유에게 우승 트로피를 내줘야 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의적풀'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강팀에게는 무자비하지만 약팀에게는 강팀전에서 벌어들인 승점을 그대로 바치는 것이다.

그렇게 리버풀은 또 한 번 아쉬운 시즌을 보냈고, 알론소는 시즌 종료 후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다. 베니테스와 질힉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제토 라인도 여전히 강력했지만 2007~09년보단 조금 약해진 모습이었다. 수비 조직력은 갈수록 붕괴됐다. 명장 베니테스도 손을 쓸 수 없었다. 결국 팀 운영에 있어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지른 질힉과 그 외 부정적 요소들이 만나 환장의 콜라보를 이루면서 리버풀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7위. 2009-10시즌이 끝났을 때 리버풀이 받아든 성적표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배웅기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회사소개기사제보제휴·광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내리리 15  |  대표전화 : 053-850-6296  |  청소년보호책임자 : 류성진
Copyright © 2014 M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