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바이블

2004~2005(이스탄불의 기적)

"Oh ya beauty-! What a hit son! What a hit!"

난세에 탄생한 영웅 스티븐 제라드는 호쾌한 중거리 슈팅으로 올림피아코스의 골망을 갈랐다. 당시 해설위원은 흥분에 휩싸여 소리를 내질렀다. 대박, 또 대박이라고 말이다!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에선 5위에 그쳤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엄청난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 16강 상대는 독일 명문 바이어 04 레버쿠젠, 리버풀은 합계 6-2로 레버쿠젠을 무찌르고 8강에 진출한다.

8강의 상대는 유벤투스였다. 당시 리버풀 선수진은 그리 강력한 편이 아니었다. 캐러거와 제라드가 버티고 있기는 하지만 2% 부족한 선수진이었다. 당시 사비 알론소는 유망주 티를 벗은 지 얼마 안 된 어린 미드필더였다. 이 시점부터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의 토너먼트 강자 능력이 입증되기 시작했다. 리버풀이 유벤투스를 합계 2-1로 꺾은 것이었다.

준결승전의 상대는 첼시였다. 당시 첼시는 리그에서 단 1패밖에 내주지 않았고, 38경기 15실점밖에 기록하지 않은 리그 역사상 최고의 팀이었다. 조세 무리뉴 감독 아래 페트르 체흐, 존 테리 등 너무나도 견고한 수비진이 버티고 있었다. 2005년 4월 27일 열린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1차전은 0-0으로 경기가 끝났다. 베니테스 또한 수비라면 일가견이 있는 감독인 데다가, 양 팀 모두 섣불리 공격 일변도로 나서진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안필드에서 2차전이 시작됐다. 전반 시작이 4분도 채 지나지 않아 '루간지' 루이스 가르시아의 골이 터졌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가르시아의 골이 골라인을 넘어선 것 같긴 한데 모두가 정확히 보지 못했다. 당시 화면을 잡은 카메라앵글 역시 그랬다. 이 골은 결승골이 돼 리버풀이 1-0으로 승리하고 결승전에 진출하지만 가르시아의 골을 '유령골(Ghost goal)'이라고 불리게 됐다.

▲ ⓒ디스 이즈 안필드

하지만 당시 골 상황 직전 체흐가 밀란 바로스에게 반칙성 태클을 가하는 장면이 있었고, 훗날 심판은 체흐의 퇴장 및 페널티킥을 선언할지 가르시아의 골을 인정할지 꽤 고민했다고 전한다. 조금 다사다난했지만 결승전에 오른 리버풀의 상대는 AC 밀란이었다. 밀란은 준결승전에서 이영표, 박지성의 PSV 아인트호벤을 상대로 어려운 경기를 펼치며 결승전에 올랐다.

당시 밀란의 라인업은 역대 최고의 선수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말네스카'라고 불리는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네스타, 야프 스탐, 카푸 수비진이 총출동했고, 카카, 안드레이 셰브첸코 등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리버풀 골문을 조준하고 있었다.

경기는 아니나 다를까 밀란의 주도였다. 경기 시작 1분 만에 말디니가 선제골을 뽑아냈다. UCL 결승전 역사상 최단 시간 골이었다. 리버풀은 해리 키웰까지 부상으로 잃었고, 카카와 에르난 크레스포의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2실점을 추가로 내줬다. 전반전이 끝날 때 스코어는 밀란 3, 리버풀 0이었다. 사실상 빅 이어는 밀란의 몫이었다.

▲ ⓒ리버풀 에코

하프타임 라커룸에 들어선 리버풀 선수들의 모습은 침울했다. 제라드가 선수들을 독려했지만 결승전 3실점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때 베니테스가 라커룸 중앙에 서서 선수들을 주목시킨 뒤 입을 뗐다.

"Don't let your heads drop. 네 머리를 떨구지 말아라.

All the players who will get on the pitch after half-time have to keep their heads held high. 하프타임 이후 그라운드에 올라설 모든 선수들은 머리를 높게 들어야 한다.

We are Liverpool, you are playing for Liverpool. 우리는 리버풀이고, 너희는 리버풀을 위해 뛴다.

Do not forget that. 그렇다는 걸 잊지 마.

You have to hold your heads high for the supporters. 팬들을 위해 너희는 머리를 높게 들어야 한다.

You have to do it for them. 너희는 그들을 위해 해낼 필요가 있다.

You cannot call yourselves Liverpool players if you have your heads down. 만약 너희가 머리를 떨군다면 너는 너 자신을 리버풀 선수라 부를 자격이 없어지는 것이다.

If we create a few chances we have the possibility of getting back into this. 만약 우리가 몇몇 기회를 만들 수 있다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거야.

Believe you can do it and we will. 너가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다.

Give your selves the chance to be heroes. 영웅이 될 기회를 잡아라."

베니테스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수비형 미드필더 디트마르 하만을 교체 투입해 카카를 마크할 것을 지시한다. 이는 굉장히 성공적인 선택이었고, 카카는 이후 후반전 45분을 포함해 연장전 30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리버풀의 기적이 시작됐다.

후반 9분 욘 아르네 리세의 크로스를 받은 제라드가 정확한 타점의 헤더로 골망을 갈랐다. 밀란 골키퍼 디다는 손을 쓸 수 없었다. 제라드는 골 직후 팬들의 응원을 유도했고, 2분 후 페널티아크 정면에서 볼을 잡은 블라디미르 스미체르가 바로스를 깻잎 한 장 차로 빗겨 나가는 중거리 슈팅으로 골망을 가른다. 스코어는 2-3.

그리고 4분 후인 후반 15분, 젠나로 가투소가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침투한 제라드에게 파울을 범하면서 페널티킥을 내줬다. 동점의 기회가 찾아왔다. 키커 알론소의 슈팅은 디다의 손 끝에 막히지만 세컨드 볼을 정확히 연결하면서 동점을 만들었다. 훗날 알론소는 이 장면을 회상하며 "태어나서 가장 빠르게 뛰었다."고 회상했다.

경기는 연장전으로 향했다. 양 팀 선수들이 모두 지쳤고, 주도권은 다시 밀란이 잡았다. 그리고 밀란이 완벽한 기회를 맞았다. 골문 바로 앞에서 볼을 잡은 셰브첸코가 강력한 슈팅을 시도하지만 본능에 이끌린 예지 두덱이 끝까지 손을 뻗으며 슈팅을 막아낸 것이었다. 결국 경기는 승부차기로 향했다.

이때 앞서 '127년, 리버풀 FC의 역사 #3'에서 설명했듯 부주장 캐러거는 두덱에게 "브루스 그로벨라(Bruce Grobbelaar)처럼 스파게티 댄스를 춰."라고 지시했고 두덱은 신들린 춤사위로 밀란 키커들의 혼을 빼놓았다. 이 당시 두덱은 평점 10점을 받는 대활약으로 '춤덱'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는데 밀란 3명의 선수들이 페널티킥을 실축한 것이다.

▲ ⓒ골닷컴

반면 리버풀은 하만, 지브릴 시세, 스미체르가 페널티킥을 성공하면서 3-2의 결과로 승부차기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빅 이어가 21년 만에 리버풀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을 리버풀 팬들은 '이스탄불의 기적'이라고 추억하지만 밀란 팬들은 '이스탄불의 악몽'이라 언급하며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으로 꼽는다.

그렇게 베니테스 아래 리버풀의 붉은 제국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리버풀은 2005-06시즌을 앞두고 모하메드 시소코, 피터 크라우치 등 선수를 영입하며 알찬 보강을 마쳤고, 새로운 비상을 준비할 수 있었다. 빅 이어를 등에 업은 베니테스의 두 번째 시즌이 시작됐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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