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레이 업, 리버풀

1919~1959

데이비드 애쉬워스(David Ashworth) 감독이 리버풀에 도착하고, 제1차 세계대전 또한 막을 내렸다. 정신적 지주 톰 왓슨 감독이 세상을 떠나고 전쟁까지 겹치면서 리버풀은 창단 후 사실상 첫 격변을 맞게 됐다. 전쟁에 참전한 선수들도 있었다. 하지만 애쉬워스는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는 데 능한 감독이었다. 1921-22시즌 리버풀은 디비전 1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 성공한다.

왓슨의 후임자로 애쉬워스가 팀을 잘 수습하면서, 리버풀에게는 다시 영광의 시간이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애쉬워스가 돌연 팀을 떠났다. 올덤 애슬레틱에서 첫 감독 경력을 시작했던 애쉬워스가 올덤으로 복귀를 선택한 것이었다. 후임은 맷 맥퀸(Matt McQueen) 감독. 1892년부터 1899년까지 리버풀에서 오랜 기간을 뛴 선수로 구단 선수 출신의 첫 번째 감독이었다.

맥퀸은 첫 감독 경력을 리버풀에서 보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팀을 잘 추스렸다. 애쉬워스의 1921-22시즌에 이어 리그 우승 트로피를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맥퀸 아래 골키퍼 엘리샤 스콧은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왕좌를 지켜냈고, 21세기 현재에 들어서도 리버풀 역대 최고의 골키퍼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선수가 됐다. 이후 맥퀸 체제는 무관에 그치며 1928년 마무리되지만, 맥퀸은 임기 종료 3년 전 공격수 고든 호지슨(Gordon Hodgson)을 영입한 것만으로도 제 몫을 다했다고 평가받는다.

▲ ⓒ리버풀 공식 홈페이지

호지슨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태생의 선수였다. 여러 유소년팀을 전전하던 호지슨의 진가를 알아본 것이 맥퀸이었다. 21세의 호지슨은 안필드에 도착하자마자 골망을 찢어댔다. 호지슨은 리버풀에서 11년을 뛰며 358경기 233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호지슨은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맥퀸의 후임자인 조지 패터슨(Geroge Patterson) 감독은 단 한 번의 우승조차 차지하지 못했다. 당시 리버풀은 그냥 중상위권 팀 중 하나일 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36년 호지슨은 아스톤 빌라로 이적했고, 패터슨이 사임한 후 리버풀은 조지 케이(George Kay) 감독을 선임한다. 호지슨이 없는 리버풀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위권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까지 발발하면서 잉글랜드는 7년 동안 리그를 중단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리버풀의 감독은 여전히 케이였다. 재개 첫 시즌 리버풀은 우승을 차지했고, 새롭게 팀에 합류한 빌리 리델(Billy Liddell)이 우승의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했다. 리델은 리버풀에서 무려 23년이나 활약했다. 리버풀보다 리델풀(Liddellpool)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때가 더 많았으니, 말 다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시즌을 제외하고 케이의 성적은 썩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없었지만, 곧장 리버풀 팬들은 케이를 그리워하기에 이른다. 1951년 케이가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사임하고 후임자로 부임한 돈 웰시(Don Welsh) 아래 리버풀이 강등이라는 수모를 겪었기 때문이다. 이후 과거 주장 필 테일러(Phil Taylor)가 부임해 팀을 수습하려 들지만 승격은 예전만큼 쉽지 않았다.

▲ ⓒ조

리버풀은 테일러를 계속해서 신뢰하지만, 오히려 부담을 느낀 쪽은 테일러였다. 테일러는 1959년 시즌 중반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리버풀은 허더스필드 타운으로 빌 샹클리(Bill Shankly) 감독을 선임한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샹클리가 리버풀 사령탑에 앉게 되면서 일어날 일들을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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