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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년, 리버풀 FC의 역사 #1
배웅기  |  baeverpo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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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23  09:3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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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풀 에코

1892~1919

바야흐로 1892년이었다. 잉글랜드 풋볼 리그가 자리 잡기 시작하고, 퍼거스 수터와 지미 러브가 영국 파틱에서 다웬FC로 팀을 옮기면서 축구 역사상 최초 유급 선수로 기록된 지 14년 만의 이야기였다. 외람된 말이지만, 이 내용은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로 공개된 영국 드라마 'The English Game'에서도 소개된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현재 리버풀 경기장 안필드의 주인은 본래 에버튼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잉글랜드 축구 최고의 라이벌로 꼽히고 있는 리버풀과 에버튼이지만, 원래 안필드의 주인은 에버튼이었고 리버풀시의 원조 축구팀 또한 에버튼이었다.

당시 안필드의 임대인이었던 존 하울딩은 1891년 안필드의 지분을 모두 매입했고, 1892년 에버튼이 안필드 생활을 마무리하고 구디슨 파크로 홈경기장을 옮김으로써 안필드의 주인이 될 새로운 팀을 창단한다. 창단 당시 최초의 이름은 '에버튼 FC 앤 애슬레틱 그라운즈'였으나, 당시 축구협회가 기존의 에버튼과 겹칠 수 있다며 구단명 수정을 권고했다. 이후 하울딩과 함께 공동 구단주를 맡고 있던 윌리엄 E. 바클리가 새로운 이름을 제안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현재의 '리버풀 풋볼 클럽(Liverpool Football Club)'이다.

   
▲ ⓒ리버풀 공식 홈페이지

첫 번째 감독은 윌리엄 바클리와 존 맥케나로 이들은 공동 감독을 맡게 된다. 그리고 1892년 6월, 리버풀은 공식적으로 창단을 승인받았고 선수진을 꾸린 후 9월 3일 역사적인 첫 공식 경기를 치른다. 상대는 하이어 월튼(Higher Walton). 그들은 8-0 대승을 거두며 역사의 첫 단추를 꿰는 데 성공한다. 공식 경기를 제외한 역사상 첫 경기는 로더햄과의 경기로, 7-1 대승을 거뒀다.

창단 직후 리버풀은 랭커셔 리그에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는 데 성공하지만, 풋볼 리그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마침 리버풀과 같은 머지사이드주를 연고로 하고 있는 부틀FC가 재정 문제로 인해 풋볼 리그 불참을 선언했고, 리버풀은 1893-94시즌부터 풋볼 리그 디비전 2에 합류할 수 있게 된다.

1893년 9월 2일, 리버풀의 첫 풋볼 리그 경기가 열렸다. 상대는 미들스브러 아이로노폴리스 FC(Middlesbrough Ironopolis FC)였다. 역사적인 첫 경기를 시작으로 리버풀은 승승장구했고, 1894년 4월 28일 디비전 1의 최하위 팀인 뉴턴 히스(Newton Heath, 現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신 클럽)를 꺾음으로써 승격에 성공한다.

하지만…

   
▲ ⓒLFC 히스토리

리버풀에게 첫 디비전 1은 쉽지 않았다. 지금으로 따지면 1부 리그격인데, 리버풀에게 너무 과분한 리그였다. 여느 승격팀이 그래왔듯 부진했고, 승격 시즌 그대로 강등된다. "저 다시 왔어요. 디비전 2." 그때까지는 아무래도 디비전 2가 리버풀에게 어울리는 옷인 듯했다. 바클리와 맥케나는 너무 쉬운 강등에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디비전 2에서 또 리버풀을 대적할 만한 상대는 없었다. 결과는 또 바로 우승, 그리고 승격. 승격이라는 좋은 성적은 무시할 수 없었지만 리버풀은 바클리와 맥케나의 공동 감독 체제를 마무리한다. 이후 새롭게 선임한 감독이 선더랜드의 톰 왓슨 감독인데, 리버풀은 왓슨을 선임하기 위해 금전적으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왓슨은 무명의 선더랜드에게 3개의 1부 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긴 명장이었다.

리버풀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왓슨은 리버풀을 탈바꿈하기 시작했고,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1894-95시즌 같은 승격 직후 강등은 먼 이야기가 됐다. 리버풀의 첫 번째 레전드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알렉스 레이스벡(Alex Reisbeck)이 활약을 시작한 시기와도 비슷하다. 결국 리버풀은 1900-91시즌 첫 번째 디비전 1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데 성공한다.

   
▲ ⓒLFC 히스토리

이후 리버풀은 확고한 강팀으로서 자리 잡은 편은 아니었지만, 종종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지금의 명문이 되기까지 기반을 조금씩 다져가고 있었다. 적어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설상가상으로 왓슨도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나면서 리버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왓슨은 리버풀을 19년 동안 이끈 정신적 지주였다. 디비전 1과 2를 오가는 그저 그런 팀에게 안긴 3개의 우승 트로피가 이를 증명한다.

어쨌든 리버풀은 부랴부랴 후임자를 선임했고, 그 주인공은 스톡포트 카운티 출신의 데이비드 애쉬워스(David Ashworth) 감독이었다. 과연, 애쉬워스는 정신적 지주 왓슨의 공백을 잘 메울 수 있었을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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