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08시즌 더비 카운티와 경기에서 터진 마이클 존슨의 데뷔골

현재 많은 축구팬들이 잊은 그 이름을 추억해보고자 한다. 마이클 존슨, '제2의 스티븐 제라드'라는 별명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한 그의 존재는 잉글랜드 대표팀에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잉글랜드는 제라드-프랭크 램파드 은퇴 후 그들을 대체할 마땅할 미드필더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당시 중위권 팀에서 도약을 꿈꾸던 맨체스터 시티에게도 반가운 프랜차이즈 스타의 등장이었다.

존슨의 등장은 화려했다. 2006-07시즌 개막 직후 위건 애슬레틱과 경기에서 교체로 출전하며 데뷔했다. 그의 나이 18세였다. 보통 잉글랜드 축구의 유소년 단계가 18세 이하-23세 이하(2군)-1군 순서로 이어지는 것을 감안했을 때 믿기지 않는 월반이었다. 해당 시즌,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은 존슨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부여했고 존슨은 후반기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등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존슨을 신뢰하던 피어스 감독은 시즌 종료와 동시에 팀을 떠났다. 2007-08시즌을 앞두고 맨시티가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을 선임한 것이다. 선수단 또한 대거 개편됐다. 오스만 다보, 조이 바튼, 이스마엘 밀러 등 선수들이 떠나고 베드란 촐루카, 엘라누, 롤란도 비안키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영입됐다. 존슨의 입지에도 적신호가 켜지는 듯했다.

▲ ⓒ인디펜던트

경쟁 포지션에만 젤송 페르난데스, 엘라누, 지오반니 세 명이 합류했고 켈빈 에투후처럼 1군 진입을 노리는 선수도 있었다. 존슨의 입지에 걱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존슨은 모두의 예상을 뒤집었다. 에릭손 감독이 매 경기 전 발표하는 선발 라인업에 존슨의 이름은 빠지지 않았다. 존슨은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더비 카운티와 홈 개막전에서 엄청난 데뷔골을 터뜨린다.

당시 2006 FIFA 독일 월드컵에서 16세의 어린 나이였던 시오 월콧이 최종 명단에 이름 올린 것을 감안했을 때, 유로 2008에서 존슨이 모국 잉글랜드를 대표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또한 축구팬들 사이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 기대감 속 10월까지 거의 매 경기를 선발로 나선 존슨의 발목을 잡은 건 부상이었다.

복부 질환이었다. 이중 탈장수술을 받았고, 2007년 12월 두 경기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그 다음 해 2월까지 팀에서 이탈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성공적으로 복귀해 다시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하지만, 아쉽게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고 2008년 9월 복부 질환의 재발과 그 상태가 심각함이 밝혀지면서 존슨은 1년 가까이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1년 가까이 휴식을 취한 존슨은 실전 감각이 만무했고, 2009-10시즌 전반기 내내 벤치 신세를 지거나 2군 경기에 투입되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폼은 일시적이나 클래스는 영원하다 했던가. 존슨은 스컨도프 유나이티드와 리그컵 16강전에서 골을 터뜨리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당시 맨시티는 리그에서만 7경기 연속 무승부를 거둘 정도로 한 끗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던 터라 존슨의 부활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도 같았다.

▲ ⓒ스카이스포츠

하지만, 운명은 그의 편이 아니었나 보다. 2009년 12월 맨시티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존슨이 심각한 무릎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시즌 아웃이었고, 그는 그 다음 시즌 또한 통으로 날려야 했다. 비슷한 시기, 만수르 구단주가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야야 투레, 다비드 실바 등 월드클래스 선수들까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당시 프리미어리그 대권에 도전장을 내민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슨을 계획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폼 회복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마침 레스터 시티 사령탑이었던 에릭손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피어스 감독과 더불어 존슨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잘 활용하는 감독이었다.

존슨은 2011-12시즌 레스터로 임대를 떠나며 맨시티보다 더 푸른 유니폼을 입게 됐다. 하지만 모두가 기대했던 부활의 시나리오는 써지지 않았다. 레스터에서 고작 9경기에 나선 것이 전부였고, 후반기에는 대부분 경기에 결장했다. 이후 맨시티에 복귀했지만 자리는 없었다. 존슨이 돌아온 맨시티는 44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정상에 올랐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경쟁력을 갖춰가는 예전과는 다른 팀이었다.

▲ ⓒ미러

그리고 2012-13시즌, 존슨은 갑작스레 불어난 체중과 관리에 실패한 컨디션 탓에 맨시티 1군에 진입할 수 없었고 팀을 떠나게 된다. 맨시티가 존슨의 잔여 계약기간 봉급을 모두 지급함과 동시에 계약을 해지한 것이다. 이후 존슨은 새로운 팀을 찾지 못한 채 사람들의 뇌리에 잊혀갔다.

이후 존슨은 특정한 문제로 인해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온 것을 밝히며 많은 축구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이에 덧붙여 "이제 남은 여생을 혼자 보낼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would be grateful if I could now be left alone to live the rest of my life.)"는 말을 남기며 축구계와 이별을 선언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2015년 1월,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는 오랫동안 잊혀졌다 생각했던 존슨의 근황을 공개한다. 존슨은 자신의 고향인 움스톤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했다. 비록 축구는 아니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2의 인생을 찾은 것이다. 잉글랜드 차세대 스타로 각광받았던 존슨, 그의 축구 인생은 부상 탓에 좌절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존슨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은 그를 추억하고, 응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 역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존슨에게 응원을 바치며 글을 마무리한다.

▲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

前 독일 국가대표 미드필더 디트마르 하만 "존슨의 플레이는 미하엘 발락을 떠올리게 한다."

前 맨체스터 시티, 레스터 시티 감독 스벤 예란 에릭손 "훌륭한 선수다. 모든 사람들은 존슨이 영국의 차세대 스타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前 맨체스터 시티 감독 로베르토 만치니 "존슨은 'big'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다. 나는 그냥, 슬플 뿐이다."

 
저작권자 © MC (엠씨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