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What if

▲ ⓒ기생충

 

"야… 기우야.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야…."

 

소식을 듣자마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비행기 안에선 잠도 못 잤다. 박사장님이 죽었다고? 기정이도? 다혜에게서 전화를 받던 순간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했다. 아침으로 먹고 있던 에그 스크램블의 잘게 펼쳐진 조각들이 목구멍에 그대로 달라붙었다.

귀국하자마자 기우네 집을 찾아갔다. 구석에 자리잡은 그 조그만 집이 오늘따라 유독 깊어보인다. 제 기능도 못하는 낡아빠진 쇳문을 지나 문을 두드렸다. 차갑게 식은 철제가 손등을 두드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골이 상접한 기우가 문을 열어줬다. 민혁아…. 이내 기우가 미친 사람처럼 웃는다.

 

"어떻게 알고 왔냐…?"

"다혜한테서 연락왔지…. 근데 진짜 어떻게 된 거야. 다혜는 네가 미쳤다고 하지, 기정이는 죽었다고 하지. 박사장님도… 전부 어떻게 된 거야?"

"다혜가… 그랬구나…. …나 진짜 쓰레기 새끼다."

"야. 알아듣게 얘기해."

 

기우가 뼈밖에 안 남은 손으로 맥주캔을 덜덜 떨며 잡는다. 나는 진짜 쓰레기 새끼야. 재활용도 안 되는 새끼. 비죽비죽 웃으며 입가로 질질 맥주를 흘리는 기우가 미친 것처럼 보인다. 아까부터 저 구석에서 힐끔힐끔 이곳을 보는 기우네 어머니도 이상하다. 뭐가 단단히 잘못됐다.

 

"야 이 새끼야. 말하라고. 어?"

"민혁이 너는 좋겠다. 인생이 존나 쉽잖아."

"지금 뭐라는,"

"나 다혜랑 사겼었어. 그것도 진하게."

 

입이 안 다물어진다. 뭐라고? 기우는 여전히 실실 웃는다. 당장에라도 저 웃는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지만 저 실성한 미소를 보니 손이 안 움직인다. 기우는 입을 계속해서 움직인다. 민혁아, 네가 없을 때 말이야….

듣고도 믿기 힘든 이야기 투성이다. 얘기를 마친 기우는 한결 홀가분해보인다. 내용물이 다 사라진 맥주캔의 빈 깡통소리만 울린다.

 

"너도 내가 남들 피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 같냐?"

"……."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더 있다간 내가 미칠지도 모른다. 아까부터 풍기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기우는 돌아서는 날 보고 웃었다. 민혁이가 도망을 다 치네.

 

"근데 민혁아."

"……."

"너는 내가 불쌍했지? 너나 박사장한테 붙어먹던 내가 기생충 같지?"

"……."

"근데 내가 볼 땐, 너도 나같은 기생충이야. 너도 다혜 이용해먹으려고 했잖아."

 

마지막 말에 왜 부정하지 못했지? 집을 나서며 든 생각이었다.

 

*

 

"쌤…!"

 

다혜가 달려와서 안긴다. 못 보던 사이 얼굴이 많이 안 좋아졌다. 다혜는 우는 얼굴로 내게 매달렸다. 쌤 없어서 무서웠어요. 어리광부리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늦게 와서 미안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머님은… 괜찮으셔?"

"울 엄마… 지금 완전 폐인이에요. 방 밖으로 절대 안 나와요."

 

다송이도 맨날 병원에 있어서 매일 저 혼자예요. 울상을 짓고 셔츠에 눈물을 묻히는 다혜의 어깨를 잡고 떨어뜨렸다. 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는 다혜를 대충 달랬다.

 

"일단 어머님 먼저 만나뵙고 올게."

"엄마 안 만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다혜의 말을 대충 듣는 척하고 안방으로 갔다. 살짝 노크를 해도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실례합니다. 작게 말하고 문을 열자 침대에 널브러져 울지도 않고 멍하니 있는 사모님이 보인다. 다혜니. 건조한 목소리가 방안을 울린다. 사모님. 절대 다혜의 것이 아닐 낮은 목소리를 뱉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본다. 커다란 눈이 새빨갛다.

 

"…너… 네가….."

"죄송합니다. 제 불찰이에요."

"전부 너 때문에…!"

 

비틀거리며 걷다 악을 쓰는 모습이 가만 보기에도 애처로워보인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을 하고 내게 다가와 하나도 아프지 않게 가슴팍을 때린다. 네가 그 사람들 소개만 안 해줬어도…, 그러지만 않았어도…! 말없이 맞고 있으니 곧 얼마 못 가 제 풀에 지쳐 쓰러진다. 제자리에 주저앉으려는 사모님을 붙잡아 기대게 하자 이번엔 목을 끌어안고 엉엉 운다.

 

"나 이제 아무도 못 믿겠어…. 믿을 사람 하나 없다구…."

"……."

"너도 안 믿을거야."

"…믿지 마세요."

 

엉거주춤하게 안겨있던 사모님이 몸을 뗀다. 흔들리는 동공이 마주친다. 눈가에 매달린 눈물방울이 툭 떨어질 것 같다. 이내 서서히 얼굴이 가까워진다. 믿지 않겠다고 말하던 사람이 입을 맞춘다.

'너도 나같은 기생충이야.'

기우의 말이 스쳐간다. 감은 눈을 떴다. 기우야 나도 기생충이라던 네 말에 왜 내가 부정할 수 없었는지 알 것 같다. 입꼬리가 빙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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