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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안에 있으면 아무 영향도 받지 않고 평화롭다고 한다. 나는 평생을 그 태풍의 눈 안에 살았다.

 

▲ ⓒ유럽우주국(ESA)

 

우리 마을은 신의 가호 아래 있다고 했다. 나는 태어나길 여기서 태어나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이 세상 모든 곳은 조용하고, 풍요로운 곳인 줄 알았다. 넓은 곳을 보지 못하고 갇혀 산 나의 큰 오산이었다.

그맘때쯤 나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을 떠나는 내게 엄마는 이런 말을 했다.

 

"세상 어디도 여기보다 안전한 곳은 없어.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꼭 돌아오렴."
"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태어나 한 번도 마을 밖을 나선 적이 없는 우리 엄마는 내 모습이 희미해질 때까지 우두커니 서서 내 뒷모습을 지켜봤다.

처음 나온 세상은 놀라운 곳이었다. 새로운 옷, 새로운 사람, 새로운 향, 새로운 물건. 우리 마을에선 볼 수 없던 것들이 널려있었다. 매일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담았다. 마을로 돌아가게 되면 언제 이 모든 것들을 잃을지 모르니까, 라는 생각으로.

3월이 채 지나가기 전, 엄마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지금 마을이 난리가 났어! 처음 들어보는 울먹임 가득한 목소리. 그 소리를 듣자마자 홀린 듯 전화를 손에 꼭 쥐고 달려갔다. 올려다 본 하늘은 푸르렀다.

 

마을에 도착했을 때 거센 비바람이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게 보였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천천히 쑥대밭이 된 우리 집으로 걸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 앞머리엔 내가 떠나던 그날처럼 망연히 서 있는 엄마가 있었다. 이제 오면 어떡하니... 우는 얼굴에도 비바람이 지나쳐 간 것처럼 보였다.

마을에선 긴급 회의가 열렸다. 우리가 신에게 미움을 샀을까요? 아니 평생 잠잠하던 마을에 왜 갑자기 이런 재앙이 닥치냔 말이에요! 귀 아프게 소리를 질러대는 어른들의 결론은 하나로 모였다. 마을 회장님이 신의 미움을 샀다. 나는 그날 눈 앞에서 회장님이 추락하는 모습을 봐야 했다. 속이 비틀렸다. 여태껏 먹은 게 전부 올라올 것 같다.

 

마을은 안정을 되찾았다. 나는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었고, 엄마는 전보다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걱정 많이 했지? 앞으론 이런 일 없을 거야. 떠나는 나는 엄마의 그 밝은 표정을 보면서 이상하게 소름이 돋아 고개를 돌렸다.

 

*

 

"큰일이야...!"

정말 얼마 지나지 않은 날,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나를 찾는 전화였다. 엄마는 전보다 더 거칠고 울음 가득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네가 필요해. 내가 필요하다고? 이상했지만 이내 마을로 달려갔다. 이번엔 전보다 더 끔찍한 모습이었다.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난장판이 된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은 전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늘 골목 어귀에 서 있던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그 이상함을 알아차렸을 때쯤 엄마는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하고 힘없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이리온. 그 입가엔 붉은 선혈이 묻어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렸다. 뒤를 따라오는 마을 아저씨들의 발소리가 귀를 아프게 때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질펀해진 흙이 도로를 점령한 이곳을 달리며 마을 입구를 쳐다봤다.

 

[신호리]

 

우리는 신의 가호를 받던 게 아니라 신의 호된 꾸짖음을 당하고 있었는데. 머리 위로 동그란 구멍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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