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지나고, 어둠이 드리우면 비로소 빛나는. 그곳에서 힘을 되찾다.

▲ ⓒ대왕암 전경. 출처:전나연

머릿속에는 온갖 걱정과 고민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의욕이란 것이 나에게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뭐든지 흘러가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지낼 뿐이었다. 이런 감정들은 아마 4학년이라는 위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닐까. 이 단어 하나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청량한 하늘과 선선한 바람은 꽉꽉 채워져 답답한 내 마음과 너무 대조됐다. 마음을 정리하고 다스리는 시간이 나에게는 반드시 필요했다. 많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치유가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돼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왕암 공원으로 나섰다.

▲ ⓒ대왕암 전경. 출처:전나연

마음을 먹고 나선 만큼 아주 덥지도 않은 날씨에 훌쩍 떠나기에 적당했다. '바다'라는 말이 주는 즐거움은 심리적으로 멀리 여행을 작정하고 가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출발과 동시에 엄청난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왔다. 그 어떤 것들보다도 좋아하는 사람과 노래만 있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하루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대왕암에 도착해 숨을 깊게 들이 마시니 콧속에는 짭조름한 바다 내음으로 가득 채워졌다. 언제 그랬냐는듯 머릿속엔 상쾌한 바람으로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줬다. 가끔씩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 찾는 곳이지만 올 때마다 그때그때 새로운 기분을 나에게 준다. 또 항상 좋은 기운을 얻고 가곤 했다. 그 행복이 오랜 기간 지속돼 나를 움직이게 하기도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기분을 되찾았고, 신이 나서 대왕암 공원을 누볐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는 내 청각적 감각을 건드리기에 충분해 몸속의 묵은 체증과 스트레스가 솨아 하는 소리와 함께 빠져나갔다.

▲ ⓒ대왕암 전경. 출처:전나연

가까이서 본 바다는 세상의 아름답다고 이르는 모든 푸른색들을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오묘하고 매력적인 색감, 짭조름한 바다 내음, 때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표현된 듯한 정말 새하얀 구름의 조합은 너무 예뻤다. 말로는 쉬이 표현할 수 없었다. 너무 당연했지만 또 새로웠던 대왕암은 다시금 날 움직이게 만들어줬다. 자연으로부터 받는 치유는 인간의 능력과 재능으로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과는 엄연히 달랐다.

▲ ⓒ대왕암 전경. 출처:전나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을 돌보기보다 나를 한 번 더 챙겨주고 사랑하는 것이 필요했다. 주변과 상황을 챙기기에 바빴던 하루하루가 더 비효율적인 나의 소중한 하루하루를 만들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행복하고, 마음적으로 편안해야 주변도 둘러보고 챙길 수 있음을 알았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에는 많은 요인이 작용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가장 컸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 주변의 자연에 대해 다시금 둘러보고, 또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적어도 당분간은 나를 더욱 움직이게 하고 자극하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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