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위키백과

 

 먼저 본문에 쓰인 황색 저널리즘의 유래와 내가 기억하는 유래는 조금 달랐다. 등장인물은 퓰리처와 허스트로 대표적인 라이벌 구도를 통한 것은 같지만 옐로키드라는 그림을 뺏고 뺏으며 일어나게 된 유래와는 달라서 또 흥미로웠다. 상황을 이해하고 의미를 알아갈수록 황색 언론만을 두고 봤을 때, 처음에는 단순히 웃고 지나갈 해프닝의 시리즈 판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깊게 파고들수록 숨겨져 있는 무서운 의미들을 파악하기도 했다.

 

 어떤 개인이나 사회 집단만이 아닌 나라의 단위를 주체로 정했을 경우 자연스럽게 집단이나 개인에게 보고자 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일원화된 의견들을 눈치채지 못하게 끌어낸다는 무서움이었다. 자신들에 메시지에 맞게 일원화된 여론몰이는 언론사 만이 아닌 해당하는 모든 것에 있어서 힘을 얻는 것과 같다. 황색 언론이라는 꽃을 피우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것보다 왜 미국 사회에 있어서 황색 바람이 불었냐는 질문이 현실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다. 

 

▲ 출처 : 연합뉴스

 

 그렇다면 해당 언론의 어떤 특징이나 어떤 요소들이 이렇게 만든 것인가. 한 개인이 봤을 때 언론의 전반적인 방향이라는 것은 직관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한 사건을 두고 여러 가지 글과 칼럼들을 통해 분석하며 또 정리하여 어떠한 결과물을 도출하여 판단하는데, 황색 언론은 앞의 설명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굉장히 직관적이며 자극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여러 가지의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열람하고 습득하는 지금의 상황과는 달리 신문과 뉴스에 집중된 그 시대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황색 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공익보다는 선정성을 우선순위로 두며, 신뢰와 진실보다는 재미와 오락의 영역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인 글자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신문 말이다.

 

▲ 출처 : 오마이뉴스

 

 현재의 한국은 황색 언론으로부터 자유로운가의 대답은 당연히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미국이 어떤 주체를 통해 비교하고 자극을 주어 자국민의 의견표출에 도움을 줬던 것이라면,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쓰레기 기사들은 만약 사실이라 하더라도 자극적인 헤드라인, 내용을 통해 이성적인 판단을 배제하게 만들고 격한 감정선을 건든다는 의미로 비판받고 있다. 여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보를 누가 습득하는가에 따라 비판의 내용도 넓어진다. 앞에서 언급했던 계층 중에서는 필요하지 않거나, 진실이 아닌 정보에 대해 거를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계층 또한 존재한다. 쉽게 이해되고 거름망을 통과해버린 많은 정보 그 자체가 그들에겐 사실이 되어버린다.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든다.

 

 입사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필요한 정보를 전달함을 다짐했던 기자들은 이런 기사를 쓰기까지 깊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상위 계층의 기준에 따라 원치 않는 선정적이고 조회 수만 그 가치를 설명하는 기사를 쓰며 기레기라고 까지 삿대질 당하는 현실을 많은 이유를 통해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황색 언론을 비판하는 내용 중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 황색 언론은 단서에서 사실을, 소문에서 역사를 만든다는 비판이었다. 퓰리처는 재미없는 언론은 죄악이라고 말했으나 한국의 현 상황을 두고 고개를 끄덕일 것 같지 않다. 단서는 단서일 뿐이고, 사실은 사실 그대로를 말해야 한다. 순간의 우스갯소리들이 한데 모여 작은 교훈이나 가십거리 정도는 던져 줄 수 있어도 올바른 역사나 미래로 향하지는 못한다. 일차원적인 본능 혹은 격한 감정만을 위한 자극적 언론이 올바른가? 질문할 수 있는 단계에서 그칠 것이 아닌 문제의식에 대해 끝없이 환기하고 깊은 고민 끝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가 아니다. 황색 바람이 가득한 한국의 현실. 그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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