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부터 청년 세대 담론이 사회적으로 부상하였다. IMF로 경제 위기와 고용불안의 일상화가 청년층 노동 조건을 급격히 악화되었다. 비정규직이 판을 치고, ‘88만원 세대’, ‘20대 개새끼론’이 등장하는 등 세대 간의 경쟁과 갈등이 심화되었다. 청년층은 정치 변동의 주체로 사회 변동에 적극적인 수용자이자 주체가 되어 2016년 대통령 탄핵 ‘촛불 집회’를 이끌어 가기도 하였다. 그 와중에 기성 세대와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청년 세대는 성공이나 행복이 아니라 살아남기를 목표로하는 ‘생존주의’나 ‘평범성의 유토피아’가 청년 시대의 에토스이다. 청년은 꿈을 좇기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원한다. 세대 담론의 젠더화를 위한 이론적 출구로서 남성성 연구의 유용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청년 세대 안에서도 계급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젠더의 격차는 인식하지 못한다. 청년 세대는 20대 남성과 여성을 포함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남성으로 표상되는 몰젠더성을 보여주고 있다. 20대 여성이 겪는 문제를 ‘여성’, 그들의 문제로 치부해버린다. 남녀 평등 시대이지만, 평등한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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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세대는 기성 세대 기존 담론을 재생산한다. 2019년 현재 여성 국회의원이 17%, 2019 세계경제포럼 성격차지수 145위 중 117위, 유리선정 DECD 29개국 중 꼴지 등 남성우월주의가 21세기 정치에 남아있다. ‘여성 국회의원’과 ‘국회의원’으로 구분하여 표현하는 등 용어에서도 젠더와 수행적 성격을 받아들인다. 대중 정치와 선거운동은 남성성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으며 남성의 영역으로 상정된다. (Carroll 1994; Duerst-Lahti and Kelly 1995; Puwar 2004-4)

  정치가 남성성이 강하게 띄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거 인종차별, 계급차별이 존재하였다. 인종과 계급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성차별은 논란조차 되지 않았다. 여성은 남성의 일부로 취급될 뿐이었다. 여성은 노예와 함께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였다. 여성 배제는 성차별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서양에서는 18세기부터 여성해방운동을 통하여 자신의 권리를 찾았지만, 대한민국은 1910년대부터 ‘신여성’이 등장하였다. 유학같은 고등교육을 받고, ‘정조는 취미다.’라는 사상을 가지고 남성과 사회에 대항했다. 가부장적인 남성은 신여성을 ‘길거리의 여성’이라고 비유할 만큼 신여성성애화 담론과 가족에게 무책임한 엄마라는 담론을 만든다. 여성이 사적인 공간으로 다시 들어가기를 원한다.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는 서양이나 동양이나 할 것없이 함께 일어나는 담론이다.

▲ ⓒ cavsconnect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남성 패권 싸움이다. 남성 패권과 남성 연대는 동성애 혐오증(homophobia),와 여성혐오(misogyny)로 연대된다. 여성혐오는 ‘여자로 태어나서 손해다’라는 말처럼 여성의 자기멸시로 연결된다. 여성혐오는 일시적 문제이거나 정책적 우려 대상의 하나로 취급한다. 젠더 변동과 연관된 세대적 특성 문제 징후는 포착하지 않는다. 청년층은 근대적 젠더 역할을 학습하고 수행하며, 세대 질서를 재구성한다.

  남성만 참여하는 사회적 의무로 병역 문제를 꼬집기도 한다. 이러한 화는 여성과 군미필자에게 수평적 폭력으로 나타난다. 또한,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을 통하여 한국의 바람직한 아버지 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함께하는 육아를 남성이 한다며 칭찬한다. tvN 예능 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에서도 젠더의 구분을 심화한다. ‘오지라퍼’라는 코너에서는 남성과 여성을 대결구도로 놓고, 남녀의 심리상태를 알려준다. SNS에서 재업로드되고 입소문을 타는 등 재미있는 코너라며 이슈가 되었다. 하지만, 방청객의 외모를 비하하는 등 여성과 남성이 바뀌었다면 논란이 되지 않는 논란이 일어나고 폐지가 되었다. 여성에게 ‘몸매 좋다.’라고 하면 문제가 되지만, 남성에게 동일한 말을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이러한 행동이 반복된다.

  이러한 국내 미디어가 젠더 구분을 재현함으로서 시청자들은 젠더 역할을 학습하게 만든다. 젠더는 그 의미의 궁극적인 기반에서 항상 섹스에 준거하게 된다. 섹스와 젠더를 일직선상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다. 한 섹스 안에 자신과 반대되는 젠더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무시된다. 그리고, 같은 인간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패러다임으로 분리하는 틀이 된다.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소수자는 소외된다.

  섹슈얼리티의 사회학에서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밝히고, 끝내려는 운동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같은 젠더 평등을 요구한다. 대한민국에서의 남성에 억압받는 여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의 페미니즘은 이 여성들을 대변하여 젠더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여성들이 억압을 받았으니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어야한다는 여성우월주의를 외친다. 페미니즘이 변질되었다. 부당 대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너도 똑같이 당해봐야돼.라며 변화를 꾀하려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도 ‘본인이 페미니스트다.’고 말했다. 성차별을 지양하지만 동성애는 반대한다. 페미니즘의 의미를 모르거나 언행불일치가 많다. 젠더 관계 속에서 성인이 되어 성평등을 지향하는 문화 컨텐츠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 평등 시민과 젠더는 무엇인가 이론적인 답이 아닌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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