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f

▲ ⓒ트루먼 쇼

 

트루먼은 끝끝내 스튜디오를 탈출했다. 처음으로 만나는 스튜디오 밖 진짜 세상은 그다지 다를 것은 없었으나 '현실'이라는 그 자체로 트루먼에겐 감동이었다. 한동안 진짜 세상을 구경하던 트루먼은 이제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세상에 한 걸음 내딛는다.

 

"저 사람 트루먼 아냐?"

"오, 맞는 것 같아. 화면보단 실물이 더 나은데?"

 

하지만 쉽진 않았다. 어디를 가도 알아보는 사람들. 자신은 모르는데 모두가 나를 알 때 찾아오는 그 공포는 트루먼을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죄 지은 것도 없지만 트루먼은 괜히 사람이 많은 곳에 갈 때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니게 됐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조간 신문에는 어젯밤 트루먼이 쓰고 왔던 모자의 회사가 어디인지, 가격은 얼마인지가 나도는 세상이었다.

 

*

 

어려웠지만 트루먼은 새로운 사랑을 찾는 것에도 성공했다. 새로 정착한 증권 회사에서 만난 직장 동료 애쉴리였다. 처음으로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아닌, 인간 트루먼을 봐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애쉴리, 나랑 결혼해줄래요?"

 

그 이유면 충분했다. 트루먼은 더 볼 것도 없었다. 그저 자신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봐준다는 것, 나 자체로 봐준다는 것이 그에게는 최고의 애정이었다. 동네 성당에서 아주 소박하게 결혼식을 치뤘지만, 또 지역신문에는 트루먼의 2번째 결혼식이라며 파파라치 사진이 떡 붙어있는 기사가 나왔다.

 

"나 때문에 미안해."

"괜찮아요. 당신 탓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어서 트루먼은 행복했다. 원만한 부부사이여서 둘은 쉽게 자녀도 가질 수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철저히 비밀리에 부치겠다 했지만 트루먼의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또 한 번 신문 귀퉁이에는 트루먼 2세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내용이 짤막하게 실렸다. 트루먼은 화가 났지만 여기서 더 반응을 보였다가는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만 더 끌 것이 분명하다 생각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무능함이 죄책감으로 덮쳐왔다.

트루먼의 아들이 6세가 되던 해, 트루먼 가족은 근처 공원으로 피크닉을 갔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세간의 관심을 받을까, 오래간만의 외출이었는데 사람들이 아는체를 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트루먼은 머리가 아파왔다.

 

'왜 나는 이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지? 스튜디오만 나오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거 아니었어?'

 

머리를 뜯으며 자책할 때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아이를 숨기는 애쉴리와 아무것도 모르고 눈만 끔뻑이는 어린 아들을 본 트루먼은 정신을 차린 후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이제 그만해주세요! 저는 더이상 그 쇼의 원숭이가 아니란 말이에요..."

 

트루먼의 절박한 외침에도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봐가며 카메라를 내리지 않았다. 트루먼은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고, 망연한 몸짓으로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마 평생 이렇겠지? 비참해졌다.

 

▲ ⓒ트루먼 쇼

 

*

 

"트루먼! 트루먼!"

 

어느 봄날, 계절답지 않게 심상치 않은 비가 내리던 날 트루먼은 5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소식을 들은 애쉴리의 가족들이 애도를 표하러 집으로 찾아왔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우산꽂이에 넣으며 가족들은 잠시 묵념하고 TV를 켰다.

 

[다음 소식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즐겨보던 트루먼 쇼의 주인공 트루먼이 오늘 죽었다고 합니다. 트루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중계 되었는데요, 지금 그의 마지막 모습도 카메라로 담기 위해 집 앞에는 취재진들이 몰려 있습니다.]

 

앵커의 말에 애쉴리는 놀란 눈으로 커튼을 살짝 젖히자 벌떼처럼 몰려든 취재진들이 일제히 카메라를 들고 트루먼의 집을 찍고 있는 걸 본다. 말도 안돼. 몸을 부르르 떨며 애쉴리는 커튼을 닫는다. 앞으로는 절대 열리지 않을 그 커튼을.

 

[다음 소식입니다. 앞서 보도한 트루먼의 죽음에 이어 이번에는 톱스타 마이클이…]

 

새로 들어온 소식에 집 앞에 줄기차게 앉아있던 취재진들이 빠르게 움직여 마당에서 사라졌다. 아마도 그 톱스타의 소식을 취재하러 갔겠지. 애쉴리는 눈이 감긴 트루먼의 손을 꼭 잡았다.

 

"앞으로 우린 못 볼테니까 마지막으로 인사하죠. Good morning, Good Afternoon,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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