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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수능날이다.

맞벌이로 바빠서 아침에는 얼굴도 보기 힘든 부모님이 오늘은 현관까지 나와서 나를 마중해주셨다.

“내신 성적으로는 힘드니까 수능 잘 봐야 하는 거 알지?”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숨통을 조여 왔고, 한 손에 들린 어머니의 도시락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네. 알아요.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인사를 한 뒤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 힘이 들었다.

교문 밖에는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했고, 밝게 웃으며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 부럽게만 느껴졌다.

교실 안은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들과 서로 수다를 떨고 있는 친구들 이렇게 두 분류로 나누어졌다.

수시와 정시의 차이겠구나 싶었다.

나도 내 자리를 찾아 앉았고, 다행히 교실 안에는 나랑 친한 친구들도 몇몇 눈에 들어왔다.

나와 같은 학원을 다니는 친구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드디어 오늘이면 다 끝이다. 컨디션은 괜찮아?”

 

나는 친구의 물음에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응! 어제 일찍 자서 그런지 괜찮은 것 같아!”

 

거짓말이었다.

학교에서도 수업이 아닌 수능 위주의 문제집 풀이만이 반복되고, 학교가 끝나면 항상 학원과 과외로 향했다.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오면 어두운 집안에 적막만이 흘렀다.

어제는 학교도 일찍 마쳤고, 학원과 과외도 가지 않는 날이어서 집에 일찍 들어왔지만 집안에 흐르는 적막은 변함이 없었다.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12년을 나는 내일의 시험을 위해 달려온 것인가 하는 생각에 그저 한숨만 나왔다.

내일이면 끝난다는 사실에 즐겁기보다는 내일의 시험 성적표 하나로, 그 종이 한 장으로 내 12년을 평가받는 것만 같다는 생각에 억울했다.

항상 바쁘신 부모님은 나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셨고, 그저 시험 기간과 시험이 끝난 뒤 나오는 성적표에만 관심을 보이셨다.

그리고 항상 만족하신 적이 없으셨다.

이를 악물고 발버둥 치며 부모님을 만족시켜드리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성적이 올라도 내게 돌아오는 건 침묵이거나 다음에는 더 노력하자는 잔인한 말뿐이었다.

나는 그저 칭찬 한 마디, 따뜻한 말 한마디를 원했던 것인데, 그 한마디로 나는 노력했던 시간들과 힘들었던 시간들이 사르르 녹고 보상받는 기분이 들 것 같았는데 부모님은 그 한마디가 그렇게 해주시기 힘드셨을까?

점점 나는 지쳐갔고, 공부에 흥미도 느끼지 못하였다.

하루는 성적이 많이 떨어진 성적표를 들고 집을 갔었다.

부모님의 반응이 두렵기도 했고, 차라리 이 성적표를 보고 부모님이 나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봐 주시길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집안에는 적막이 아닌 싸늘한 기운이 돌았고, 부모님의 눈빛이 너무도 차갑게 느껴졌다.

그 다음날 나는 과외 한 개가 더 늘어났다.

내 학창시절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끝이 나는 것 같아 서러웠다.

이런 생각들에 머리가 복잡해졌고 소리라도 크게 지르고 싶을 정도로 답답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책상 위에 과일 한 접시를 올려주시며 나를 한 번 바라보시고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가셨다.

오늘은 그냥 일찍 잠자리에 들고 싶었지만 책상 위에 과일 접시를 보자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고 나는 몸을 겨우 일으켜 책상에 앉아 공부를 시작했다.

새벽에 아버지도 들어오셨었다.

“내일이 수능날이니 오늘은 적당히 하고 자라. 컨디션 조절도 능력이야.”

아버지의 이 말이 지겹게만 느껴졌다.

나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문제집의 페이지만 넘겼다.

조금이라도 자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불안함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나는 컨디션이 최악이다.

친구한테 왜 그런 거짓말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저 친구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친구는 나와 얘기를 조금 나누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가방에서 정리된 노트를 꺼내 어려웠던 부분들을 다시 보았다.

그러던 중 종소리가 울렸고, 수능이 시작되었다.

한 문제씩 풀어나갔고, 모르는 문제에서는 그저 한숨만 나왔다.

시간은 부족하게만 느껴졌고, 한 과목이 끝날 때마다 아쉬움과 왠지 모를 울컥함이 몰려왔다.

점심시간에는 밥도 잘 들어가지 않았고 조금 먹은 것마저 체한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시험이 끝이 나고 나는 연필을 내려놓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모를 만큼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여서 느껴졌다.

그렇게 멍한 표정으로 학교 밖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친구들은 수능이 끝났으니 놀러 가자고 했지만 오늘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고 싶었다.

학교 밖에는 수험생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많았고, 나는 가족들에게 웃으면서 또는 울면서 뛰어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집으로 갔다.

집안은 변함없이 조용했고, 나는 침대로 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방안에 있는 전신거울 속 나는 무표정한 얼굴에 많이 지쳐 보였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휴대폰에는 ‘어머니’라는 세 글자가 띄어져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시험은 잘 봤어?”

 

예상한 질문이었다.

 

“잘 모르겠어요.”

 

나는 잘 보았다고도 못 보았다고도 대답할 수 없어 모르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그 대답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네가 후회 없으면 된 거야. 네가 최선을 다해왔다는 거 너도 알고 엄마도 알잖아.”

 

어머니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어머니는 말을 이어나가셨다.

 

“엄마는 우리 딸이 이렇게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줘서 고마워. 이미 지나간 시험은 너무 신경 쓰지 마. 엄마랑 아빠가 바빠서 다른 부모들처럼 신경 많이 못써줘서 미안해 우리 딸.”

 

참아왔던 감정들과 함께 눈물이 터져버렸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정말 무엇이 그리 서러웠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그렇게 소리 내어 울다가 조금 진정이 되어서야 말을 할 수 있었다.

 

“엄마, 나 정말 힘들었어. 나 정말 많이 힘들었어.”

 

항상 어머니라고 불렀던 나는 왜인지는 모르지만 엄마라고 불렀다.

 

“우리 딸 고생한 거 알아. 그동안 너무 고생했고 잘해왔어.”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또다시 말없이 울기만 했다.

엄마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동안 굳어있던 나를 녹였고, 그 말 한마디가 감사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야 들어보는 그 말 한마디가 서러웠다.

 

“성적표로 너를 평가할 수도 없고, 엄마도 아빠도 그 누구도 너를 평가할 수 없어. 너는 너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고 특별한 사람이잖아. 그렇지?”

 

엄마는 잠시 내 대답을 기다리시다 대답이 없자 말을 이어가셨다.

 

“엄마랑 아빠가 신경을 못써줘서 우리는 네가 어긋나갈까 봐 걱정 많이 했었어. 그래서 더 엄하게 대했던 것 같아. 엄마, 아빠가 표현은 잘 못해도 항상 우리 딸 많이 사랑하고 아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이잖아.”

 

처음으로 엄마가 나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셨다.

기분이 이상했다.

 

“오늘은 엄마가 일찍 퇴근하고 가서 맛있는 저녁 해줄게. 아빠도 오늘은 일찍 들어온다고 하시니까 오랜만에 세 식구같이 저녁 먹자. 알겠지?”

 

나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훌쩍거리며 일어섰다.

책상 위에는 어제 엄마가 놔두고 가신 과일 접시가 눈에 보였다.

과일 접시에 압박감을 느껴서 어제 나는 건드리지도 않았었다.

주방에 치워두려고 쟁반을 들자 쟁반과 접시 사이에 종이가 보였다.

접시를 들자 편지가 놓여 있었다.

나는 편지를 읽고 다시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엄마는 우리 딸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았으면 해.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학력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네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으려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언제, 무엇이 하고 싶어질지 모르잖아. 엄마는 집안 사정으로 대학교도 가지 못했고 내가 원하는 걸 생각할 시간도 없었어. 그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취업을 하고 돈을 벌어야 했었지. 그러다 엄마가 하고 싶은 게 생겼었는데 포기해야 했었어. 엄마는 고졸이었고, 다시 시작하기에는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벅찼거든. 그러다 너희 아빠를 만났고 이렇게 예쁜 딸이 생겼지. 엄마는 우리 딸이 태어났을 때 생각했었어. 우리 딸은 절대 나처럼 꿈을 포기하면서 현실을 살아가게 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어. 그런데 어느 날 이렇게 훌쩍 커버린 너의 모습을 보니 미안했어. 너의 자라는 과정에 엄마가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그래서 미안했어. 엄마가 항상 공부 이야기만 해서 많이 서운하고 힘들었지? 엄마는 네가 꿈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으면 해서 그랬던 거였어. 엄마도 엄마로서는 많이 서툴고 부족해. 이런 엄마인데도 이렇게 예쁘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 엄마한테 우리 딸은 항상 1등이니까 내일 시험 긴장하지 말고, 너 자신에게 후회가 남지 않게만 하고 와. 정말 힘든 시간들이었겠지만 그 시간들도 내일의 시험도 다시 돌아오지는 않으니까. 엄마가 우리 딸 응원하고 있을게. 그동안 너무 수고했어. 우리 딸 엄마가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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