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발전하는 국제뉴스, 한국은 어떠한가?

국제뉴스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해외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 들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발전한 뉴스의 일종이다. 하지만 이는 시대별로 조금씩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19세기 중후반에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제국주의 확산이였다.

식민지배를 하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하고 해외 시장 관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국제뉴스의 필요성이 커졌다. 또한 뉴스가 정보전달의 역할 뿐만 하는게 아니라 제국주의 정책이 그나라 통치자들에게도 전달 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국제뉴스가 발전 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기술도 함께 발전했다. 당시 AP 통신사, 아바스 통신사, 로이터 통신사 등이 생겨났고 각 국가의 영향력 만큼 통신사의 영향력도 강했다. 이들은 국제뉴스를 만드는 곳이지만 당시 제국주의 시대에 맞게 경쟁국들의 정보, 군사 정보와 교환등을 다루는 일을 했다. 국내 뉴스와 다르게 국제 뉴스는 여러 나라의 상황을 보도하기 위해선 특파원을 보내고 이러한 뉴스를 찾는 수요층과 더불어 광고주 또한 필요했기 때문에 20세기에 들어와 더 발전하고 전성기를 맞기 시작했다.

▲ 출처: pixabay PD 저널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라 생겨난 중산층을 겨냥하여 고급 잡지의 등장과 함께 자연스럽게 고급정보 수요가 커지면서 그들이 국제 뉴스의 주요 수요층으로 성장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정보전달에 초점을 맞춘 국제뉴스가 점차 이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한 정체성을 갖게 만들기도 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은 뉴스를 일상적이면서 반복적으로 보도하여 사람들 스스로가 주입 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자아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봐도 흔한 예시가 될 수 있다. 아랍인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지역에 이민자들을 위한 센터를 설립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가? 대부분 사람들은 이유없는 반대를 할 것이다. 왜 그럴까? 거대한 통신사들은 해외에서 벌어지는 전쟁, 특히 중동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집중취재하고 대서특필하며 강조한다. 그들은 무력을 주로 사용했으며 그 결과는 참혹했고 전후의 폐허 된 장소들을 보여주고 집터를 잃어버린 길거리로 내쫓아진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국제뉴스를 접한 타국사람들은 물론이고 이는 그 대상이 되는 나라의 사람들의 정체성까지 잡아먹게된다. 따라서 언젠가부터 그 나라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나는 늘 이성보단 감성이 앞서고 무력을 내세우는 파괴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뉴스는 왜 이런 역할을 하게 된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수요가 있고 돈이 되기 때문에. 그리고 간단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정체성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국제뉴스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자극적인 기사들로 도배되어 있다. 전쟁에 대해 다루고 이민자들에 대한 프레임이 있는 뉴스들을 보도하는 것이 그 예시이다.

▲ 출처: AP통신 웹사이트 캡쳐본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국의 국제뉴스는 해외 통신사들이 가서 취재해 온 기사를 필터링 없이 그대로 번역해서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 통신사를 통하면 돈이 덜 들고 직접 해외 특파원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특정 통신사가 원하는 방향 혹은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까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뉴스보도를 그대로 끌고와서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왜 아랍인을 무서워하고 어쩌면 경멸하기 까지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이, 프랑스가 취재한 기사들을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인 즉슨 우리의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비판적인 시각을 키우는게 아니라 남의 나라에 맡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뜻이다. 영화 "트루먼쇼"에서 초반에 그는 자신이 사는 공간을 누군가가 만들고  인생관과 정체성, 왜 바다를 건널 수 없게 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지도 않는다. 현재 우리의 모습이 트루먼이 높아져가는 가짜 하늘을 보면서 바깥 세상은 위험한 곳이라고 옆 사람들과 팔짱끼고 보고 있는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싶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 한국의 국제뉴스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한국만의 시각이 없다는 것이다. 객관과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며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향후 국제사회가 변함에 따라 보여줘야 할 대처방법이나 최소한의 물음표는 던져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 통신사들이 원하는 대로 국민정체성 또한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이 북미회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 미국 AP통신이 말해주는 것을 받아쓰고 있는데 어떻게 주체적으로 북한과의 관계 양상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문제를 바다 건너 미주가 보는 방식대로 생각하게 되면서 점차 국력은 축소되고 그들의 허수아비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것처럼 우리나라 대부분의 엘리트층들은 미국에서 교육받고 그들의 사상을 받들어 한국에 퍼다 옮기는 일을 해 오고 있다. 미국의 원조를 받으면서 커온 대한민국이지만 발전 할수록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꿈틀거림이 필요한 시점에 국제뉴스의 퇴보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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