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 저널리즘의 발전과정과 한국언론의 문제점

▲ 출처: 네이버 공식 지식백과

황색저널리즘이란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사건을 극대화하고 선정적이거나 과도하게 취재하여 보도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의 가장 원시적인 본능과 호기심을 자극하여 흥미를 끌 만한 이슈를 크게 보도하는 것이다.

이 말은 뉴욕저널과 뉴욕월드지가 황색 옷을 입은 모습으로 쿠바와 스페인과의 전쟁을 부축이고 정부가 개전을 하도록 압력을 가했던 풍자 이미지에서 처음 나왔다. 19세기 미국에서 황색 저널리즘이 꽃을 피우게 된 배경은 미국이 쿠바의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전쟁을 예의주시하면서 부터이다. 미국의 팽창주의자들에 의해 쿠바 또한 미국의 식민지가 되어야하고 이를 위해 스페인으로부터 쿠바를 매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에 잇따라 미국언론은 풍자 이미지와 캡션, 머릿글 등을 이용해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황색저널리즘의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 쿠바에 파견 된 메인 호의 폭발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를 스페인의 소행이라고 단정짓고 그렇게 선동하기 위해 미국 주류 황색언론들은 서로 스페인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이미지, 그들이 배상해야 한다 등의 뉘앙스를 지닌 헤드라인 등을 사용한다. 이후 도움이 필요한 쿠바의 불쌍한 소녀의 이미지를 이용하고 그들에게 도움의 손을 뻗는 것이 상식이고 인간애라는 명분으로 미 언론들은 개전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강조시켰다. 또한 관련 된 이미지를 쏟아내며 정부에게 노골적인 압력을 가한다.

당시 미디어 이미지에서는 미국이 개전을 하는 것이 애국주의이자 불쌍하고 핍박받는 쿠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 주는 이상주의로 포장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황색 저널리즘이 보도하는대로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대로 선동되어졌고 정부는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스페인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대통령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개전 이후 쿠바가 아닌 필리핀에서의 전투는 미국 주류 황색언론과 정부가 팽창주의를 실현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이 모든 배경에는 미디어 이미지가 있는데 처음에는 쿠바-스페인 개전을 해야한다로 선동을 한 후 해외 식민지를 확보해야 한다 까지 뻗어갔다. 이 주장 이후엔 또 다른 이미지를 중복 전재하고 반복해서 재생산되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황색 저널리즘의 특징은 글 보단 수 많은 이미지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왜 스페인으로부터 쿠바를 자유롭게 해줘야 하는지, 그런 과정속에서 스페인이란 나라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는지, 개전 이후 해외 식민지의 확보가 왜 필요한지 등에 대해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며 많은 사람들을 선동시켰다. 이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황색언론이 원하는 방향으로 따라가게 되었다.

▲ 출처: KBS저널리즘 J 

당시 미국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현재 우리나라의 언론은 제역할을 잘 하고 있을까에 대한 의문점이 생겼다. 우리사회에선 여전히 황색저널리즘이 존재하고 사람들이 거기에 휘둘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최근 일을 예로 들자면 “버닝썬 사건”이 떠오른다. 여러 연예인과 고위관리직들이 연루되었고 마약, 폭행, 경찰유착 정황 등이 포착되었다. 어떤 거대한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쫓아가다 보면 연루된 사람들을 잡을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언론보도 상황을 보면 특정 연예인만이 과도하게 부각되어 신문의 한 면을 장악하고 그에 관련된 사람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또, 이름이 알려진 누군가의 성스캔들, 클럽과 물뽕(마약성분이 들어있는 약을 술에 타는 것)등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헤드라인을 배치한다. 혹은 주류 인물과 관련된 또 다른 연예인의 추악한 사생활과 성범죄 등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그들이 나눈 대화내용, 피해자 인터뷰, 목격자 증언 등 자극적인 요소들만 집합하여 내보낸다. 또한 이러한 기사와 이미지를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보도한다. 그러면 정작 중요한 몸통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꼬리만을 쫓으며 언론이 원하는 방향으로 휩쓸리게 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으로 사람들을 선동하진 않았지만 어떤 것을 숨기기 위해 미디어를 이용해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사건이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러한 예시가 현대판 황색저널리즘이자 우리나라는 여전히 황색저널리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스페인 전쟁 이후 반제국주의에 대한 논의는 실제와 다르게 미디어에선 팽창에 드는 비용 즉, 경제적 비용 부담때문이라고 했다. 그 경비 때문에 고도 비만이 된 대통령의 모습 또한 이미지와 함께 보여졌다. 이 말인 즉슨 그 실제가 어떻든 간에 미디어 이미지로 인해 보여지는 것은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이를 호기심 자극요소를 잔뜩 묻혀 보도하면 사람들은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슬픈 현실이지만 2019년도 한국 언론도 별반 다를게 없다. 언론이 보여주고 싶은 것, 선동하고자 하는 대상, 자극적인 이미지와 단어들만 있으면 권력을 쥔 그들이 우리의 세상을 손쉽게 통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깨고 나와야 할 이유를 스스로 느끼고 주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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