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보 문고

 어렸을 때부터 문학을 사랑한 어머니 밑에서 여러 가지 동화와 소설을 접하면서 자란 탓인지, 커갈수록 자연스럽게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중학교 문학 시간에 책을 통해 시인 ‘백석’을 만나면서 그의 문학에 푹 빠지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백석의 시집 ‘사슴’을 읽게 되었다.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으로 근현대사 속 인물이다. 그의 시는 정제된 운율이 있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형식 대신 시속에 이야기 구조를 넣은 서사 지향적인 시가 많다. 시집 ‘사슴’은 1936년 1월 20일에 국판 69쪽의 100부 한정 자가본으로 간행된 시집으로 백석 특유의 이야기 구조를 가진 ‘리얼리즘적 시’와 다양한 감각적인 이미지와 이국적인 시상을 엮은 ‘모더니즘풍의 시’를 동시에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 그의 많은 시들 중에서도 특히 이 시집에 실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나의 마음속의 심금을 울린 시였다.

▲ 네이버 지식백과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일대기나 예술에 대한 철학 등을 다루는 백석의 기존 작품들과는 다르게 그의 젊었을 적 연인인 ‘자야와의 사랑’을 겨울을 배경으로 하여 아름답게 풀어낸 시이다. ‘자야’라는 이름은 기생이었던 ‘잔향’에게 백석이 붙여준 호로, 이백의 시 자야오가에서 따온 이름인데, 오랑캐를 무찌르러 간 낭군을 기다리면서 부르는 애절한 자야의 노래에서 이름을 따왔기 때문인지, 백석과 자야는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했고, 서로를 아꼈지만, 백석의 부모의 반대 탓에 이별을 맞게 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해서 그런지 시를 읽으면 나도 모르게 코가 찡해지는 여운이 남는 것 같다. 또한 한겨울에 눈이 소복하게 내린 숲을 걸으며, 나도 모르게 나탸샤를 그리워하며 무작정 나타샤를 찾아 떠난 백석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 고수진

 시를 읽으면서 나는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더욱 아름답다는 표현이 이 구절에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해석해 보자면, 백석의 상상 속에서 나타샤는 '나'에게 더러운 세상을 버리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백석 자신의 목소리로, 사랑했던 자야를 잊고 사랑했던 자야가 있던 세상을 떠나 산골로 가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현실에 대한 '나'의 부정적 인식, 사랑과 순수를 유지하기 위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즉 백석은 자신이 사랑하는 자야를 만나지 못하는 현실을 부정하며,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있음을 희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백석이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었던 이유가 단순히 머릿속으로 그려낸 허구의 상상을 글로 쓴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이 겪은 경험을 글로 썼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백석의 시에는 사랑에 대한 현실적인 한계와 절망, 슬픔과 고독 또한 짙게 배어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백석과 자야는 끝내 이루어질 수 없었지만, 가슴 아픈 사랑이었기에 더욱 아름다웠던 사랑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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